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혼자 한 줄 알았는데 부모님 영향…난 운 좋은 편”

등록 2017-03-07 19:16수정 2017-03-09 13:29

[짬] 그리스 문명 책 펴낸, 김승중 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캐나다 토론토대 고미술학과 교수. 사진 피터 도모랙(Peter Domorak) 제공
김승중 캐나다 토론토대 고미술학과 교수. 사진 피터 도모랙(Peter Domorak) 제공

캐나다 토론토대 고미술학과 김승중 교수(44)는 두 개의 아이비리그 대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천체물리학 전공으로 박사를 딴 뒤 다시 컬럼비아대에서 그리스 예술 연구로 박사를 땄다. 그가 선택한 두번째 전공 ‘그리스 고고학’은 사실상 백인의 전유물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고고학자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세계를 누비며 예술품을 발굴 혹은 도굴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김 교수는 그리스 고고학계의 매우 희소성 있는 동양 학자인 셈이다. 그가 최근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통나무)이란 책을 펴냈다. 지난 6일 토론토에서 살고 있는 그를 전화로 만났다.

프린스턴대 천문학 박사 딴 뒤
예술사로 컬럼비아대서 박사
‘학자’ 김용옥과 최영애 맏딸

“이과 배경, 예술사 연구에 도움
학문 통합 추세, 고루 공부해야
‘시각적 인지에 시간 영향’ 관심”

천문학자는 하늘을 봐야 하고 고고학자는 땅을 판다. “프린스턴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뒤 파리에서 1년 연구원으로 지낸 적이 있어요. 이때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문명,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걸 느꼈어요. 예술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강하게 들었죠.” 천문학 박사를 마친 뒤 존스홉킨스대학 박사후 과정에 있을 때 이런 생각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최영애 전 연세대 중문과 교수다. “책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반응이 의외였어요. 굉장히 좋아하시면서, 하려면 빨리 박사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또 고대 그리스부터 폭넓게 하라고도 하셨죠.” 예술사의 여러 분야 가운데 하필 그리스 고고학이었을까? “버지니아대 석사 1년차 때 이탈리아 시칠리아 유적 발굴에 참여했어요. 한여름에 땀 흘리며 노가다를 하면서 맘을 정했어요. 군대생활처럼 오전 5시30분에 기상해 오후 3시까지 일해요. 장난이 아니죠. 육체적인 카타르시스(정화)가 있었죠. 2500년 동안 땅속에 묻힌 유물이 햇빛에 드러난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 것도 짜릿하죠.”

그는 이번 책에서 자신의 전공인 그리스 예술을 매개로 역사, 문화, 여성 등 그리스의 여러 측면을 다룬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시각자료다. 그리스 예술의 정수라 할 만한 시각물이 일품요리로 꽉 찬 잔칫상처럼 지면을 채우고 있다. 전문연구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파르테논 신전의 석상에 담긴 신화적 스토리와, 와인 위에 배가 떠 있는 환상을 안겨주는 그리스 도자기 그림 등에 대한 저자 해설을 듣노라면 250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가 직접 3D 기술로 재현한 그리스 신의 이미지도 볼 수 있다.

이과 배경이 공부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고 묻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석사 때 과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교수들이 저에게 여러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이 때문에 석사 초기부터 오리지널한(독창적) 연구를 할 수 있었죠. 이과 출신이라 간단한 통계학적 접근으로도 연구 결과를 낼 수 있거든요.” 그는 “앞으로 학문 분야가 통합될 것”이라며 “한국 학생들도 고루고루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원류이다. 동양인이 그리스 고고학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언어 장벽인데, 저는 영어가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리스어와 독일어, 이탈리아어는 석사 과정 때 배웠고 불어는 파리 체류 때 습득했죠. 중국어는 원래 조금 합니다.” 그는 “원래 고고학은 유럽 부유층의 학문이었다”며 “그리스 문학 분야는 동양 연구자들이 조금 있지만 고고학 쪽은 동양 사람이 거의 없다”고도 했다.

그의 예술사 박사 논문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두가지 시간, 흐로노스(객관적 시간)와 카이로스(주관적 시간)를 다뤘다. 흔히 말하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할 때의 그 때가 바로 카이로스이다. ‘카이로스는 인간에게 궁극적인 결정권을 주는데, 이런 선택의 자유야말로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이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왜 시간이었을까?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빛이 워낙 장거리를 움직여서, 관찰할 때는 시간이 오래 지난 뒤였죠. 앞으로도 시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요.” 시각적 인지가 시간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는지도 연구하고 싶은 테마 가운데 하나다.

‘바르베리니 파운’
‘바르베리니 파운’

그리스 문명의 매력을 묻자 “다 매력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나만 꼽자면 아무래도 민주주의이겠죠. 민주주의 형태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법적으로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이소노미아’란 관념도 있었죠. 굉장히 앞섰죠.”

좋아하는 그리스 작품 하나를 꼽아달라고 하자 “약간 창피하다”며 일명 ‘바르베리니 파운’이라고 불리는 조각품을 얘기했다. 벌거벗은 사티로스(반인반수인 숲의 정령)가 다리를 벌리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다. “남성은 보고 여성은 보이는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 시각적·감각적 체험을 시켜 주는 극적인 미를 지닌 작품이지요. 볼 때마다 기분이 그냥 좋아집니다. 하하.”

학자 김승중에게 부모는 어떤 존재일까? “어려서 과학을 전공한 것은 (문과 전공인) 부모님에게서 독립한다는 의미도 있었어요. 뒤에 문과, 철학 쪽으로 전환을 했죠.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받은 영향이 나중에 나타난 것이죠. 혼자 싸돌아다니면서 혼자 한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아니었던 것이죠. 전 운이 좋은 편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