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지금
북한이 답답하고 한심해 보인다.
일본의 새 관방장관 아베 신조가 7일, 지난 3~4일의 북-일 베이징 접촉과 관련해 “(일본인)납치문제 진전 없이 과거 보상문제가 척척 풀려나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납치문제의 전면적인 해결이 정상화의 전제라고 말했다. 아베는 4일 기자회견에서도 “(베이징 접촉 때) 일본쪽은 납치문제에 대해 상당부분 해야 할 얘기는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3일에도 그 얘기를 꺼냈다. 스티븐 해들리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화해서 “일본은 납치문제의 전면적인 해결을 꾀하겠다”고 했고, 해들리는 “일본에게 납치문제가 극히 중대한 문제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맞장구쳤다.
이뿐인가. 4일에는 새 외상 아소 다로까지 납치문제와 관련해 “저쪽(북조선)은 원래부터 ‘해결 끝났다’는 태도였고, 그게 전향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 얘기만 나오면 일본은 온통 납치문제다. 두 나라 사이엔 납치문제밖에 없고, 그게 만악의 근원인데, 그 책임은 몽땅 북한에게 있다. 북한이 떴다하면 이런 얘기를 떠드는 게 정부당국자고 정치인들이며, 그걸 중계하듯 온갖 신문 방송들이 시시콜콜 되새김질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매체에 주로 의존할 세계의 시선들은 당연히 ‘흉포한 늑대=북한, 선한 양=일본’이라는 도식적 이미지를 한층 더 증폭해서 머리에 입력하기 마련이다.
이 기막힌 역사 뒤엎기라니! 납치가 천하에 몹쓸 짓이며 용납 못할 행위라는 건 두말할 필요조차 없지마는, 그럼 일본은 그런 죄악에서 자유로운가. 불과 얼마전까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유사 죄악이 실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건만, 그 죄는 어디가고 피해자인 북한만 어느덧 가해자가 됐나. 납치문제는 바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뒤바꾸는 기막힌 ‘마술장치’다. 원폭피해 하나로 2차대전 피해국이 돼버리는 이치와 같다.
“일본은 북조선 폭군에 대처하는데 (우리)동맹국”이라고 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6일 발언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익 <요미우리신문>은 7일 피납자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었던 ‘김철준’이라는 사람이 북에 납치된 남쪽 사람이라는 ‘북한 고관’얘기를 흘리면서 한국정부가 인정하는 남쪽 납북자가 486명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
납치문제라는 ‘마술장치’는 한-미-일을 묶어놓는 인계철선이기도 하다. 북한이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스스로 비판해온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요하는 것과 같다. 북한은 일본이 이미 다 해결된 납치문제를 트집잡아 일을 꼬이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남쪽 납치자들 문제 역시 빨리 풀지 않는 한 그 주장을 누가 믿겠는가? 왜 그런 비본질적이고 국부적인(?) 일을 뭉기적대며 시간만 질질 끌어 본질과 전체를 그르치고 있을까? 전략·전술은 고사하고 한 국가 관료집단의 무능과 부도덕이 어찌 그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북한이 답답하고 애석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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