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지음/교양인·1만4000원 ‘평화학·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여전히 세상의 언어를 의심하고 자기 자신을 심문한다. 그가 쓰는 글이 상투적이지 않은 ‘비수 같은 언어’라고 평가받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도 여성주의는 ‘보편 철학’(인문학)의 자격을 얻지 못했다거나 ‘여성 문제’에 국한돼 있다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 25년 동안 들어왔다는 이 편견에 대해 정희진이 또 한번 친절하게 답했다. “여성주의는 성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인간과 사회를 공부한다”,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여성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제다”. 통념을 신념 삼고도 언필칭 ‘진보 시민’을 자처하는 이들이 타인의 질문을 방해하고 입을 막으려 할 때 주로 쓰는 화법을 꼬집는 것으로 읽힌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매체에 쓴 글들을 모은 <낯선 시선> 머리말에서 지은이는 “언어/사유의 힘”을 강조한다. 언어를 갖지 못해 존재를 위협받는 사회적 약자이거나 ‘가르치려 드는 것’과 ‘가르쳐 달라는 것’ 사이에 고통스럽게 놓인 ‘을’들에게 여성주의는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얘기. 나아가 지은이는 ‘젠더’가 작동하는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메타젠더’의 세계관, 인식론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단언컨대, 여성주의를 모르고 앎을 말할 수 없다.” 책에 실린 총 61편의 글은 ‘○○(상식 말 부끄러움 고통 남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각 장 아래 배치했다. 수저계급론, ‘빨갱이’ ‘종북’ 담론, 국가 안보, 일베, 세월호, 여혐과 남혐, ‘잠자는 공주’, ‘더러운 잠’, 혼외 성애, 성매매….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 중 그의 ‘낯선 시선’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여성주의가 ‘젠더’뿐 아니라 세상 모든 현상을 인식하는 거대한 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듯이.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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