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중 지음/알마·1만6000원 정의당 원내대표인 노회찬 의원은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자신이 진짜 ‘진박’임을 고백한다. 늘 옆에 끼고 읽는 책은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공약집인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며, 당선되면 노동자 해고요건 강화, 중소기업 및 골목상권 보호 등 ‘박근혜표 대표공약’을 자신이 실천하겠다고 약속한다. 양극단에 서 있는 두 정치인이 같은 정책을 약속하면 한 사람의 공약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쉽게 공약하고 쉽게 뒤집어도 ‘공약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고 넘어가니 큰 선거 때 ‘뻥’이 점점 세진다. <공약파기>는 그런 정치 이제 그만하자고 말한다. 지은이가 공약에 주목한 동기는 ‘왜 우리의 민주주의는 매번 실패하는가’라는 부제에 잘 드러나 있다. 선거 때는 솔깃한 공약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수정하거나 파기하고 심지어 공약과 정반대로 가더라도 “당신, 선거 때 공약하고 다르잖아?”라고 따져 묻지 않아서라는 게 지은이의 답이다. 정치인의 발이 아닌 입을 좇고 권력다툼 위주로 보도해 온 언론의 책임이 크다. 주류 언론들은 당선증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주요 공약 재검토를 주문하거나 지킬 공약과 지키지 않을 공약을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한겨레> 기자인 지은이는 선거의 중심에 공약을, 정치의 중심에 정책을 두는 쪽으로 정치 저널리즘이 바뀌면 정치도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공약파기>는 그 첫걸음인 셈이다. 지은이는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드는 데에 공이 큰 ‘이명박근혜’ 9년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이 무엇을 공약했고, 실제 국정과제나 정책으로 연결된 것은 무엇이며,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각각 국민성공시대와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했지만 국민은 성공하지 못했고 행복하지도 않다. 2012년의 박근혜는 진보 의제에 가까운 경제민주화 공약을 쏟아냈다. 지은이의 평가는 싸늘하다.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 18개 가운데 “제대로 이행한 공약은 네 개, 이행하려고 노력한 공약은 두 개, 시늉만 낸 것은 한 개”였고 “나머지 열한 개의 공약은 이행 실적이 처참한 수준”이다. 지은이는 또 ‘경제민주화 실종사건’이라고 불릴 만큼 2013년 11월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 이후 박근혜의 입에서 사라졌던 ‘경제민주화’란 단어가 느닷없이 3년 만인 탄핵정국 초입에 다시 등장한 사실을 짚었다. 노동이 소외된 경제민주화 공약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견해를 덧붙인다. 같은 방식으로 기초노령연금, 4대 중증질환 진료비 국가 부담, 누리과정 보육대란 등을 분석한다. 지난 대선일이었던 2012년 12월19일 밤, 많은 기자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지은이는 홀로 공약집 전문 수백장을 출력했다고 한다. ‘공약 연구모임을 제안하며’라는 머리말에서는 박근혜의 구상을 “알고 싶었다”고 적었지만 실제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