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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9년간 아무도 내가 깨어난 줄을 몰랐다

등록 2017-03-23 18:51수정 2017-03-23 19:13

잠깐 독서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유진 옮김/푸른숲·1만5000원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고 지오디는 노래했다. 무릇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라니.

이유는 영어 원제목 <유령 소년>(Ghost Boy)에 약간 녹아 있다. 그러니까 살아 있되 아무도 살아 있는 줄 몰랐던 소년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이야기다. 12살 때 목이 아파 조퇴한 뒤 13살부터는 원인도 모른 채 ‘살아 있는 코마’ 상태로 지냈다.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주변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빈껍데기처럼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16살 때 다시 의식이 돌아왔다. 듣고 보고, 느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반응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니 아무도 몰랐다. 그가 세상을 또렷이 인식한다는 사실을. 그는 계속 의식없는 ‘식물’로 다뤄졌다. 아이큐 30 이하 장애인을 위한 돌봄시설에서 불가사리 같다는 비아냥을 듣고, 학대에 노출되기도 했다.

어머니도 그의 귀환을 눈치채지 못했다. 수년간의 고투 끝에 기약없는 희망을 버리고 다른 두 남매의 정상적 삶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 터였다. 지친 어머니는 어느날 울먹이다 말한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네가 죽어야 해.” 유령의 삶은 9년간 이어졌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조차 없었기에.

따뜻한 간병인 버나가 그의 의식이 깨어났음을 알아차리고서야, 그는 살아 있는 세계로 한발 한발 들어설 수 있었다. 25살 때다. 의사소통 프로그램을 익혀 직장을 구하고, 대학을 나오고, 아내를 만난다. 풍경들이 다시 반짝인다. 공저자인 메건 로이드 데이비스가 삶의 경이를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전한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압도적인 느낌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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