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인류를 구할 공생의 도구로 이반 일리치는 시, 자전거, 도서관을 꼽았다죠. 이 얘기를 지난 28일 밤, 강남 한복판의 최인아 책방에서 들었습니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해냄)를 펴낸 심리기획자 이명수와 그의 ‘짝꿍’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 함께한 북 콘서트에서였죠.
편집자와 지은이는 ‘지옥’이란 말이 들어가는 책 제목을 두고 함께 갈등했답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지옥’이란 걸 광고하듯이 펴들고 지하철 같은 데서 읽기 좀 곤란하지 않겠냐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의 반응은 꽤 좋았다고 합니다. 지은이는 개별 존재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경우가 바로 ‘지옥’이라 설명했습니다.
이번주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자니?’ 칼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존재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주장은 곧, 내리는 비를 허용하거나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는 거죠. 찬반이나 합의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며칠 전 재일 학자 강상중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사계절)과 재독 학자 송두율의 <불타는 얼음>(후마니타스)이 나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고, 지옥보다 무섭다는 그리움에 시달려 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강상중은 “악의 연쇄”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연쇄”를 제안하더군요. 증오는 인정받고 연결되고 싶은 욕망과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에 여기서 연대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죠. 대단한 반전입니다. 28일 북 콘서트에서도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것에서 어마어마한 괴력이 나온다”(정혜신)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진하는 페미니즘>(돌베개)에서 낸시 프레이저는 경제적 분배, 문화적 인정, 정치적 대표의 삼각구도를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는 데는 빵과 장미, 눈길을 포개줄 사람까지 모두 필요합니다. 하긴 이것 중 하나라도 온전히 가지면 좋으련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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