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지음/어크로스·1만4000원 우아하고도 단단한 문장들의 연쇄를 만날 때 책읽기는 즐겁다. 나는 보지 못한, 또는 스치고 지나쳤을 사물과 사태의 어떤 ‘진경’을 드러내는 시선을 담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는 둘 다 만족시킨다. 이미 팬덤을 지닌 김혜리 <씨네21> 기자가 썼다. 2014~17년 1월 <씨네 21>에 연재한 글에 일부 다른 지면의 글들을 더했다. 영화 관람 날짜를 기준 삼아 1~12월로 나눠 배치했다. ‘3월 / 어쩔 줄 모름’에선 <소셜포비아> <아노말리사>를, ‘4월 / 괜찮다, 괜찮다’에선 <4등> <한공주> <브루클린>을 다뤘다. 이런 구성이 이미 실렸던 글들에 새로운 흐름과 느낌을 창출한다. 지은이는 “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내 음색은 전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의 글”을 쓰고 싶었다고 토로한다. 이런 바람은 채워진 것 같다. 영화를 주인공 삼아 글을 끌고 가는데, 거기엔 영화를 보며 가다듬은 저자의 섬세한 음색이 배어있다. 단순한 글솜씨 이상의 통찰과, 이를 가능케 하는 범주화 및 연관짓기의 의식적 노력이 이룬 결과일 것이다. 서사를 넘어 카메라 워크나 편집과 분석까지 더해, 영상예술에 대한 인문적 이해의 새로운 지평으로도 읽는 이를 이끈다. 오프닝 시퀀스 분석을 통해 “<위플래쉬>가 음악의 노역과 공포에 관한 영화임을 시사”한다는 문장을 내놓는 일은 그래서 가능했을 터이다. 글 한 편을 읽으면 거기 서술된 영화를 (다시) 직접 보고 싶어지는 경험이 책을 읽는 동안 40차례 되풀이된다. 영화를 보면 다시 책을 펴고 싶어지는 ‘무한루프’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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