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4·3은 말한다>(전5권), 제민일보(濟民日報) 4·3 취재반: 1~3권(양조훈·서재철·고홍철·고대경·김종민·강홍균), 4권(김종민·김애자), 5권(김종민) 지음, 전예원, 1994~1998
생각을 멈추게 하는 책이 있다. 기존의 인식을 모두 버리게 되는 책. 내게는 <4·3은 말한다>가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제주 4·3’은 내 인식의 기반이자 나침반이 되었다. 한국의 인문학은 4·3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간혹 “국정교과서 찬성, 내용은 여성과 노예의 노동이어야 한다”고 ‘농담’한다. 역사는 시간 순서상의 배열이 아니라 장소와 주체의 이야기다. 역사교과서가 한국 현대사와 4·3으로부터 시작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도 없는 이념논쟁 따위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4·3은 말한다>를 이 지면에 처음 쓴다. 한 번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 같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있었지만, 리뷰를 하려면 다시 읽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섯 권, 각각 500~600쪽에 달하는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책 내용을 머리에 다 담지 못했다. 책의 일부는 악몽으로 재연되었다. <4·3은 말한다>는 읽는 이의 윤리학과 정치학을 신문(訊問)한다.
이 지면에서 나는 4·3을, <4·3은 말한다>를 말할 수 없다.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잊지 않도록 하는 책일 뿐이다. 7년 7개월간의 사건 전개(1947년 3월1일~1954년 9월21일), 3만명의 희생자, 언어화하기 힘든 폭력의 양상, 10년 동안의 취재와 기록, 6000명의 증언자, 미군정 비밀문서를 포함한 자료만 2000종.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장 확실하고 구체적인 4·3 진상 규명 의지를 공약으로 내걸어 제주도 전 지역에서 1위 득표를 했다. 하지만 ‘제주 4·3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4·3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피해자 가족의 신고는 드물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족을 이룬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는 언제나 현재의 언어다.
이 책은 4·3 연구의 가장 기본적이고 정확한 자료로서, <제민일보> 연재 당시인 1993년 압도적 지지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하였고 일본어로도 출판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인문학 입문서’로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단지 ‘기자정신’이라고 말하기만은 힘든, 쓰는 자의 마음이 글의 장르 자체를 바꿀 정도의 힘과 진정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정신이 인간사(고통, 희생, 한, 분노, 국가, 폭력, 가족…)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역사, 문화인류학, 젠더 연구 등 그 어떤 학문 분과의 전문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어떤 전문가가 이렇게 쓸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기자와 학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가 쓰는 자(記者)일 뿐이다. 문제는 쓴다는 행위에 따른 성실성과 노동, 윤리다. 이 책의 저자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근대-세계사 속의 한국) ‘인간’, ‘역사’, ‘언어’를 공부할 수 있는 첫 책을 얻었다.
세월호가 인양될 때 아무 말 없이 며칠을 보냈다. 어떤 상호 비교도 적절하지 않지만, <4·3은 말한다>를 다시 읽을 수 없는 심정과 비슷했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의 공통적인 독후감은 “자기 인식의 한계에 대해 생각함”, “세월호에 관해 말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함”이 아닐까.
세월호의 ‘미수습자’와 4·3의 ‘행방불명자’. 세월호는 떠올랐고 4·3은 법의 영역에 들어왔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유족들의 경험과 역사 쓰기는 어떤 차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질문만이 유일한 사실(史實)일지도 모른다.
제6권에 해당하는 부분은 신문에는 연재되었으나 출판이 미루어졌다. <제민일보>에 연재될 때부터 1권부터 6권까지 집필한 김종민 기자가 현재 7권에 해당하는 부분을 인터넷언론 <제주의소리>, <프레시안>, <오마이뉴스>에 동시 연재하고 있다. 6권과 7권이 함께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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