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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계절이 주인공이자 절대자인 소설들

등록 2017-04-06 19:28수정 2017-04-06 20:18

아닌 계절
구효서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구효서(사진)의 <아닌 계절>은 계절을 주제로 삼은 테마 소설집이다. 책에는 제목에서부터 계절을 표방한 단편 여덟이 묶였는데, 여기서 계절은 주인공들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자와 같은 구실을 한다. 회화나무가 화자로 나오는 ‘봄 나무의 말’을 비롯해 수록작들 모두가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다루긴 하지만, 인간의 존재감은 매우 흐릿하고 희미한 반면 추위와 더위 같은 계절의 감각은 뚜렷하게 부각된다.

“여자가 아는 것은 겨울도 한겨울이라는 것, 그래서 몹시 춥다는 것, 분명한 것은 그것뿐이라는 것이었다.”(‘세한도’)

“남아 있는 게 있다면 덥다는 것, 8월의 정오는 뜨겁다는 것, 분명한 것은 그것뿐이라는 것이었다.”(‘하이눈, August’)

‘세한도’의 주인공은 철거를 앞둔 도시 변두리에서 홀로 지내고, ‘하이눈, August’의 주인공은 이국의 항구에서 여행자의 삶을 살지만, 그들 삶의 구체적 실상은 매우 모호하다. 그들을 지금의 삶까지 끌어온 과거사가 어떠한지, 현재 그들의 머리와 가슴을 사로잡은 열망 또는 회한이 무엇인지를 독자는 알기 힘들다. “나는 지금 여기서 누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세한도’)라거나 “이 모든 게 뭐야, 뭐야”(‘바다, 하일(夏日)’)라고 주인공들 자신이 자문하는 마당에, 어디까지나 국외자이자 구경꾼일 뿐인 독자가 뾰족한 답을 내놓기란 불가능한 노릇 아니겠는가.

구효서
구효서
결혼 직후 이념을 좇아 월북했다가 62년 만에 돌아온 노인과 그 부인(‘여름은 지나간다’), 또는 단 한 번 사랑했던 여자와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지만 군복무를 마친 그 아들과 사실상 처음으로 부자(父子)의 삶을 살기 겨우 두 달 만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들을 여읜 사내(‘Fall to the sky’)처럼 뚜렷한 사연을 지닌 경우도 없지 않지만, 다른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의 내력과 마음 상태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낯선 행성에 불시착했다는 상투적 느낌”(‘바다, 하일’)이 인간들을 괴롭힌다면, 저 위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계절 또는 절대자에게는 “정말 무엇이 땅 위의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지”(‘Fall to the sky’)가 의문일 법하다.

‘봄 나무의 말’이 나무를 화자로 삼아 구어와 토속어 그리고 전통 가락을 시도해 본 실험작이라면, ‘12월 12일-이상에게’는 이상의 소설 ‘12월 12일’과 ‘날개’ ‘봉별기’ 등의 상황과 구절을 활용한 일종의 오마주라 할 수 있다.

글·사진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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