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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역사철학적 사유까지 품은 영화미학

등록 2017-04-13 19:57수정 2017-04-13 20:11

영화와 의미의 탐구 1·2
미하일 얌폴스키 지음, 김수환·이현우·최선 옮김/나남·각권 2만1000원

미하일 바흐친, 유리 로트만의 계보를 이으며 현대 러시아 인문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미하일 얌폴스키(1949~) 미국 뉴욕대 비교문학·러시아문학 교수의 책이 번역돼 나왔다. 영화학을 자기 학문의 출발점으로 삼은 얌폴스키는 이미지의 철학적 차원과 재현의 역사 전반을 넘나드는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와 의미의 탐구>는 지은이가 1982년부터 2002년까지 쓴 23편의 글들을 ‘언어’, ‘신체, ‘사건’이라는 세 가지 열쇳말로 정리한 책으로, 영화미학에 대한 지은이의 지적 여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지적 여정은 20세기 영화이론이 걸어온 길과도 일치한다. 옮긴이인 김수환 한국외대 러시아학과 교수는 “영화를 구조화된 기호체계로 파악하려 했던 영화기호학(언어)에서 출발해, 기호체계가 아닌 감각적 경험으로 바라보는 현상학적 접근(신체)을 거쳐, 마지막으로 영화 자체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철학적 접근(사건)으로 나아간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하일 얌폴스키 미국 뉴욕대 교수. 유튜브 화면 갈무리.
미하일 얌폴스키 미국 뉴욕대 교수. 유튜브 화면 갈무리.
1974년 러시아 영화예술연구소에 취직한 지은이는 외국어 텍스트 번역 일을 맡으면서 서구의 이론과 담론을 집중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1960~70년대 태동한 영화기호학은 영화언어의 모델을 자연언어와 비슷한 것이라 봤는데, 1부인 ‘언어’편에 실린 지은이의 초창기 작업들은 대체로 이런 태도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에 만족하지 못했던 얌폴스키는 점차 기호학적 방법론을 거부하고, 영화가 어떻게 실제 사물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재현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몽타주’ 기법에 주목한 2부 ‘신체’편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장 최근의 사유를 담은 3부 ‘사건’편에서 지은이는 ‘카이로스’라고 하는 ‘시간성’의 문제를 천착한다. 자연적 의미의 시간인 ‘크로노스’와 달리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기회와 결단의 시간을 의미한다.”(옮긴이) 얌폴스키는 “카이로스는 시간을 갖지 않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시간성을 조직하고 시간의 의미인 사건을 창조한다”고 썼다. 이에 대해 김수환 교수는 “영화는 단지 물리적 흐름으로서의 시간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복수의 시간적 계열 사이의 교차를 담아낼 수 있는 매체라는 뜻”이라며 “영화의 본질을 끊임없이 묻는 얌폴스키의 지적 여정이 역사철학적 사유로까지 나아간 셈”이라고 말했다.

알렉세이 게르만, 키라 무라토바,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등 러시아 영화의 ‘3인방’(트로이카)으로 꼽히는 영화감독 3명에 대한 밀도 높은 비평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지은이는 서구의 이론과 이들의 실제 영화를 재료로 삼아 자신의 영화이론을 발전시켰다. 이 책 자체를 소쿠로프 감독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과거 예술영화 ‘붐’을 타고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같은 감독들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으나, 뒷세대인 3인방과 그들의 작품은 그동안 미지의 영역에 남겨져 있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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