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 미디어들은 얼마전까지 ‘엉클 조’ 이미지로 인기 있었던 스탈린을 히틀러의 제자이자 모방자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출처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 오월의봄 제공.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오월의봄·2만3000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8월14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처칠 영국 수상은 뉴펀들랜드 연안의 전함에서 만나, 함께 파시즘에 대항해 자유를 지킨다는 의지를 담은 ‘대서양 헌장’을 작성했다. “미국이 파시즘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노먼 록웰의 그림이나 할리우드 전쟁영화, 역사책 등을 통해 마치 공식적인 사실처럼 자리를 잡았다.
2002년 처음 출간됐고 2015년 개정판이 나온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는 제목 그대로 이런 ‘신화’의 허구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책이다. 벨기에 출신 역사학자 자크 파월은 냉철한 수사관의 눈으로 ‘누가 이득을 얻는가’(Cui bono)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지며,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이용했던 역사의 실체를 종합적으로 그려냈다.
미국의 2차 대전을 독립전쟁과 같은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묘사한 포스터. 출처 워싱턴DC 문서보관소. 오월의봄 제공
먼저 지은이는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처음부터 파시즘에 호의적이었다는 사실을 들춰낸다. 이들의 진정한 적은 파시즘이 아니라 사유재산과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협하는 볼셰비즘과 소비에트연방(소련)이었다.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일소하고 노동조합을 해체한 나치는 오히려 호감의 대상이었고, 반유대주의와 같은 인종주의에서도 공감대가 있었다. 물론 경제적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독일에 진출한 코카콜라, 제너럴모터스, 포드, 아이비엠(IBM), 국제전신전화회사(ITT) 등은 히틀러 집권 뒤 큰 이익을 거두었고, 이런 거래는 독일에도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자원과 기술을 가져다주었다. 예컨대 아이비엠의 독일 자회사 ‘데호마그’는 독일에 생산 자동화를 위한 펀치 카드 기술을 제공했는데, 1938년 순자산이 총 투자액의 2배에 가까운 1400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달했다고 한다. “진주만 공습 전까지 미국이 히틀러의 제3제국에 투자한 전체 규모는 약 4억7500만 달러로 추산된다.”
미국은 전쟁을 바다 건너 ‘불구경’하며 경제적 이익을 챙겼지만, 독일이 점령지를 넓혀 ‘자급자족’ 체제로 진입하자 독일 대신 영국이 점차 최대 고객으로 떠올랐다. ‘렌드리스’라는 신용 거래로 군수 물자를 집중적으로 팔아넘긴 덕이었다. 장사의 무게추가 독일로부터 점차 연합군 쪽으로 기울자, 파시즘에 호의적이었던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의 태도도 점차 “양쪽 다 멸망할 때까지 계속 싸우라”로 바뀌어갔다.
미국이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다는 ‘대서양 헌장’의 내용을 감상적으로 그려낸 노먼 록웰의 일러스트. 출처 워싱턴DC 문서보관소. 오월의봄 제공
지은이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의도와 달리 전쟁에 끌려들어갔다”고 분석한다. 2차 대전의 진정한 전환점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이 아니라 1941년 모스크바 전투였다. 당시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은 독일의 소련 침공을 응원하는 쪽에 가까웠는데, 붉은 군대는 예상외로 끈질기게 저항했고 그해 12월5일에는 반격에 나섰다. 이어 같은 달 7일 일본의 진주만 폭격, 11일 미국을 상대로 한 독일의 전쟁 선포, 결국 미국의 참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복잡한 ‘고차 방정식’과 같다. 동아시아에 눈독을 들였던 미국은 독일이 아닌 일본과 전쟁을 하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일본을 자극했다. 진주만 폭격은 그에 대한 일본의 응답이었다. 소련 침공에 실패한 독일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통해 동맹인 일본이 소련의 후방을 압박해주길 기대했다. 그 결과 미국은 아시아의 일본과 유럽의 독일 모두를 상대로 전쟁해야 할 상황에 내몰렸다.
모스크바 전투로 전쟁의 흐름이 바뀐 1941년 12월4일 <시카고트리뷴>에는 나치즘과 소비에트 공산주의라는 두 마리 야수들이 서로를 죽이길 바란다는 내용의 만평이 실렸다. 출처 <검열된 전쟁>(조지 레더). 오월의봄 제공
하루아침에 소련에서 나치로 주적이 바뀌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참전 이유로 내걸게 됐지만, 미국의 주요 목표는 “소련이 홀로 나치 독일을 격파하고 유럽을 해방한 뒤 그 성공의 열매를 거두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 이는 일본 원자폭탄 투하나 드레스덴 폭격, 종전 뒤 독일의 분단 등 미국이 보인 석연치 않은 행태들을 설명해주는 열쇠다. 미국과 영국은 1945년 2월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도시였던 드레스덴에 세 차례나 대대적인 폭격을 가해 최소 2만5000명에서 최대 4만명의 민간인을 죽였는데, 그 주된 목적은 소련에 대한 경고였다고 한다. 두 차례의 일본 원폭 투하도 마찬가지 성격을 지닌다. 종전 뒤 미국에 군국주의 주범들은 믿을 만한 ‘반공주의’ 세력으로서 숙청보다는 협력의 대상이 됐다.
결국 2차 대전은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에게 ‘좋은 전쟁’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발생한 대공황을 덮을 수 있게 해줬고, 군수 물자 공급 등 전쟁 그 자체로도 이익이 됐으며, 재계 인사들과 워싱턴 권력 배후의 특권을 더욱 강화해줬다. 1942~45년 사이 4년 동안 미국의 가장 큰 회사 2230개가 벌어들인 세후 수입은 전쟁 전 4년과 비교할 때 41% 증가한 144억 달러였다는 추산도 있다. 전쟁 중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반트러스트법’을 폐지하는 등 정치사회 구조 자체가 기득권들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재편됐다. 찰스 라이트 밀스는 “국가의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열쇠들을 사기업에 넘겨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 기업인 제너럴모터스의 독일 자회사인 오펠은 나치 독일을 위해 항공기와 트럭을 대량생산했고, 히틀러는 1943년 오펠에 ‘모범적인 기업’ 칭호를 부여했다. 오펠 사보의 표지에 그 내용이 실려있는 모습. 출처 뤼셀스하임 시립기록보관소. 오월의봄 제공
지은이는 ‘좋은 전쟁’이 냉전으로 계속되고, ‘테러와의 전쟁’ 등 아예 ‘영구 전쟁’으로 굳어진 맥락도 짚으며, 조작된 위협으로 끊임없이 이익을 만들어내는 ‘전쟁국가’ 미국의 참모습을 고발한다. 전쟁이 낳은 이익은 소수의 몫이었지만, 막대한 전쟁 비용은 평범한 미국인들과 이른바 ‘제3세계’ 사람들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