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캠페인을 하고 있는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강맑실)가 대선 후보들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각 정당 대선후보의 독서 모습을 찍어 소셜 미디어 등으로 배포하고 있는데요. 사진에도 각자 개성이 뚝뚝 묻어납니다. 문재인 후보는 <목민심서>를 들었고, 홍준표 후보는 독서 때 차를 마시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군요. 안철수 후보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장면이고, 유승민 후보는 책상 앞에 반듯이 앉아 몰두하는 모습입니다. 심상정 후보는 박근혜 정부가 검열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린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들어 보입니다.
출판계는 지난달 10개의 문화정책을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항의이자 차기정부에 올바른 출판 문화정책을 촉구하는 뜻이었죠. 그런데 19일 밤 대선 후보들의 ‘스탠딩 토론’을 보니 기대 이하였다는 얘기들이 터져 나옵니다. 문화정책은 특히나 소외된 이슈였습니다. 설마 아무리 정신이 없었대도,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문화계 탄압을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니겠죠. 막힘 없이 생각하고 검열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자유, 그 글을 책으로 출판할 자유, 그런 책을 읽을 자유가 가로막힌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 아니겠죠.
지난 2012년 11월, 한 출판잡지가 출판인 180명을 대상으로 새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싶어하는 책을 조사했더니, 1위로 <피로 사회>가 꼽혔습니다. 이참에 대통령 구합니다. 과로에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집에 들어가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면서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다음날 부랴부랴 집에서 뛰쳐나오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자들, 자영업자들에게 책 읽고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는 대통령 말입니다. 책 읽기가 일부 계층만 향유하는 ‘문화적 사치’가 되어야겠습니까.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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