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지음/마음산책·1만2500원 부모와 자녀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콩트 분량에 담은 연작소설로는 작고한 작가 최인호의 <가족>이 유명하다. 월간지 <샘터> 1975년 9월호부터 2010년 1월호까지 연재한 이 가족 소설의 21세기 버전이 이기호(사진)의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라 할 법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이 작가 자신의 가족이라는 자전적 성격, 그리고 다른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좋은 일과 궂은 일이 어우러지는 가족 이야기를 해학적인 필치로 그린다는 점에서도 두 소설은 통한다. 월간 종합교양지 <좋은생각>에 2011년부터 3년 남짓 연재한 44꼭지에다 에필로그를 곁들여 낸 <세 살 버릇…>의 첫 꼭지 ‘가족은 자란다’에서 작가의 아내는 언제부턴가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결혼 6년차에 다섯 살, 두 살짜리 두 아이 엄마라는 조건 때문에 재능을 썩힌 채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아내에게 작가는 언젠가 ‘둘째가 세 살 되면 대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집안일을 돕겠다’고 했던 약속을 떠올린다. 약속은 약속일 뿐 현실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어서, 작가는 이런저런 피치 못할 사정을 들이대면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는데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하는 아내의 말인즉슨 전혀 뜻밖의 것이었으니, 이러했다. “나, 두 달째 생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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