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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이들은 자라고 부모는 늙는다

등록 2017-05-11 19:59수정 2017-05-11 20:25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마음산책·1만2500원

부모와 자녀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콩트 분량에 담은 연작소설로는 작고한 작가 최인호의 <가족>이 유명하다. 월간지 <샘터> 1975년 9월호부터 2010년 1월호까지 연재한 이 가족 소설의 21세기 버전이 이기호(사진)의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라 할 법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이 작가 자신의 가족이라는 자전적 성격, 그리고 다른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좋은 일과 궂은 일이 어우러지는 가족 이야기를 해학적인 필치로 그린다는 점에서도 두 소설은 통한다.

월간 종합교양지 <좋은생각>에 2011년부터 3년 남짓 연재한 44꼭지에다 에필로그를 곁들여 낸 <세 살 버릇…>의 첫 꼭지 ‘가족은 자란다’에서 작가의 아내는 언제부턴가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결혼 6년차에 다섯 살, 두 살짜리 두 아이 엄마라는 조건 때문에 재능을 썩힌 채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아내에게 작가는 언젠가 ‘둘째가 세 살 되면 대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집안일을 돕겠다’고 했던 약속을 떠올린다. 약속은 약속일 뿐 현실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어서, 작가는 이런저런 피치 못할 사정을 들이대면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는데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하는 아내의 말인즉슨 전혀 뜻밖의 것이었으니, 이러했다. “나, 두 달째 생리가 없어….”

산달이 가까워진 아내가 두 아이와 함께 멀리 사는 처갓집에서 출산을 기다리기로 하자 철없는 남편은 다시 총각이 된 기분으로 사뭇 설레기까지 한다. 그러나 모처럼 어울려 놀고자 전화를 돌려본 친구들은 하나같이 가족들 챙기느라 바쁘다며 몸을 사리고, 하는 수 없이 거실에서 ‘혼술’이나 일삼던 작가는 욕실에서 눈에 들어온 아이들의 물총과 장난감 배를 보고는 울컥하고 만다. 식구들이 그리워 아내에게 전화를 하자 큰아들이 받는데, “아들, 아빠 많이 보고 싶지?”라는 물기 어린 질문에 대한 아이의 답인즉, “아니요. 괜찮은데요.” 이어지는 꼭지들에서도 작가는 “세상 모든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한 뼘 정도는 더 위대하구나” 깨닫는가 하면,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뜻밖의 면모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들은 자라고 부모는 늙는다.

“벚꽃이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면, 다시 아이들은 그만큼 자라나 있겠지. 아이들의 땀 내음과 하얗게 자라나는 손톱과 낮잠 후의 칭얼거림과 작은 신발들. 그 시간들은 모두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면 그 일상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최재봉 기자, 사진 마음산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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