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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혁명 100주년에 돌아보는 러시아 문학의 영광과 상처

등록 2017-05-11 19:59수정 2017-05-11 20:28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여덟 작가
혁명의 출발에서 종언까지 아울러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이현우 지음/현암사·1만5000원

1917년 러시아혁명은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문학이 혁명의 대의에 복무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 불린 문학관이 대표적이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는 100년 전 혁명의 지대한 영향 아래 펼쳐진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흐름을, 막심 고리키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까지 여덟 산문 작가와 그들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살핀다.

서평가이자 번역 비평가로도 잘 알려진 지은이 ‘로쟈’ 이현우는 러시아 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대학보다 시민 대상 강의에 더 주력하는 이다. 전작인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2014)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몇차례에 걸친 대학과 시민 강좌 내용을 정리하고 보완해서 펴낸 것이다.

“러시아 문학은 오직 1917년의 시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톨스토이(왼쪽)와 극작가 안톤 체호프(오른쪽)가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문을 연 소설가 막심 고리키(가운데)와 함께 포즈를 잡았다. 현암사 제공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톨스토이(왼쪽)와 극작가 안톤 체호프(오른쪽)가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문을 연 소설가 막심 고리키(가운데)와 함께 포즈를 잡았다. 현암사 제공
헝가리의 문예 이론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죄르지 루카치의 이 말은 지은이가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으로도 유효하다. 그러나 루카치의 말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1991년 이전에, 그러니까 혁명과 그에 따른 체제가 여전히 진행 중인 때에 나온 것이었다. 지은이가 1917년 혁명의 출발만이 아니라 1991년 혁명의 종언까지도 아우르는 “두 겹의 시선”을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대표되는 혁명 문학의 당대적 의미를 인정하고 평가하면서 동시에 그 시대적 한계는 그것대로 지적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1906)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등장하기는커녕 아직 1917년 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에 나온 작품이다. 그렇지만 각성한 노동자 아들과 그 아들의 유지를 잇는 어머니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효시로 평가된다. 혁명을 예견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문학관을 선취한 작품인 셈이다.

예브게니 자먀틴의 소설 <우리들>(1924)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나 조지 오웰의 <1984>(1949) 등에 큰 영향을 끼친, 디스토피아 문학의 선구작으로 꼽힌다. 과학기술과 전체주의적 통제가 결합된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이 소설은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져 소련에서는 정식 출판되지 못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1930년 집필)와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1938년 탈고)는 작가 생전에는 발표하거나 출판하지 못한 소설들이다. 불가코프는 당대의 문학 권력과 세태에 비판적이었지만, 플라토노프는 “제 미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함께할 것”이라 다짐할 정도로 사회주의 이념에 투철한 작가였음에도 감시와 탄압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이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수준보다 더 왼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라는 지은이의 해석이 흥미롭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도화선이 된 1905년 전함 포템킨 수병들의 반란을 다룬 세르게이 에이젠시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 중 유명한 오데사 계단의 학살 장면. 현암사 제공
1917년 러시아혁명의 도화선이 된 1905년 전함 포템킨 수병들의 반란을 다룬 세르게이 에이젠시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 중 유명한 오데사 계단의 학살 장면. 현암사 제공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1928~1940)이 “소비에트 문학에서 서사적 조망 내지는 서사시적 조망을 처음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상찬을 받은 반면, 또 다른 노벨상 수상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1957)는 혁명보다는 삶과 예술의 편에 섬으로써 비판을 받았다. 역시 노벨상을 받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결국 해외 망명까지 했지만, 사실 그의 이념은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바탕에 깐 공산주의였다. 귀족 신분이라 혁명 이후 망명을 택해야 했던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는 모국어인 러시아어를 버리고 영어로 써야 했던 자신의 처지를 필생의 문학적 주제로 삼았다.

“소련에서는 부조리 문학이라는 게 따로 필요 없습니다. 현실 자체가 부조리하니까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면 바로 부조리 문학이 됩니다.”

솔제니친에 대한 장에서 지은이가 쓴 이 말은 인간 해방과 사회 변혁을 목표로 출발한 혁명이 결과적으로 그 반대 방향으로 향했던 사정, 그러니까 1917년과 1991년 사이의 간극에 대한 요약이자 이 책의 결론으로서 새겨둘 법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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