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포퓰리스트인가-그가 말하는 ‘국민’ 안에 내가 들어갈까
얀 베르너 뮐러 지음, 노시내 옮김/마티·1만4000원
포퓰리즘이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정작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불명확한 것이 현실이다. 한쪽에서 상대 정치 세력에게 포퓰리즘을 비난의 딱지로 써붙이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국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포퓰리스트가 되겠다고 자처하는 현상이 일어날 정도다.
독일 출생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가 쓴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는 포퓰리즘에 대해 나름의 체계적인 개념 정리를 시도한 책이다. 지은이는 포퓰리즘이 엘리트에 장악된 민주주의를 교정하는 데 유용하다는 시각, 그 배경에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나 특정 사회경제 집단의 절망과 분노가 있다는 분석, 공론의 장에서 포퓰리스트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 등 기존의 접근법들을 배격하고, 무엇보다 포퓰리즘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에 주력한다.
대표적인 포퓰리스트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1월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뒤 첫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욕/신화연합뉴스
지은이는 “포퓰리즘은 정치 세계를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완벽하게 단일한 국민이 부패하거나 도덕성을 결여한 엘리트에 대항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본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만’이 국민”, 곧 국민 가운데 일부만이 ‘진정한 국민’이라는 인식이다. 엘리트 비판은 포퓰리즘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인민에게 호소하는 정치적 행위가 모두 포퓰리즘인 것도 아니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포퓰리즘의 ‘반다원적’ 성격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라는 모호하고 잠재적인 범주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포용성을 연속적으로 확장해가는 체제다. 그런데 포퓰리즘은 이를 중단시키고 ‘국민’을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실제적 존재로 못박으려 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포퓰리즘은 대의제에 반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되레 대의제의 특정한 버전을 옹호한다. “국민이 인식하고 소망하는 단일한 공동선을 특정 정치세력(우리)만이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포퓰리스트는 대의제를 ‘자유위임’(대표가 알아서 판단)이 아닌 ‘기속위임’(정해진 임무를 그대로 수행)으로 인식한다. 포퓰리스트들이 ‘국민’과의 ‘계약’을 강조하고, 정당 조직이나 언론을 경유하지 않는 ‘직접 대표성’에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집권을 해도 계속되며, 헌법을 고치고 민주적 절차를 훼손해 반대 세력의 정당성을 제거하는 등 ‘진정한 국민’이라는 상징적 본질을 영속적으로 추구한다.
지은이는 포퓰리즘이 “대의정치에 영구히 따라붙는 그림자”이며 그 반다원적인 성격으로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라고 본다. 다만 자유민주주의 옹호자라면 포퓰리즘을 통해 현 대의제의 문제점이나 다원주의의 가치를 더욱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서구 유럽의 경우 1930~40년대 전체주의를 겪은 뒤로 유권자를 대표하는 의회 대신 헌법재판소 등 기술관료주의의 권한을 강화해왔는데, 이런 조처들이 오늘날 포퓰리즘의 득세를 부른 역사를 톺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제도의 실패에 맞서 일어나는 저항들을 막연히 포퓰리즘으로 보아선 안된다는 지적도 의미 깊다. “우리가 국민”이라는 그들의 구호에는 “우리‘만’ 국민”이 아니라 “우리‘도’ 국민”이라는 의미가 담겼으며, 국민의 상당 부분을 정치적으로 소외시켜온 포퓰리즘 체제에 대항하는 정당한 구호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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