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와타나베 기요시 지음, 장성주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라고 믿었던 천황이 한낱 비겁한 졸장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 젊은이의 충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산산조각 난 신>의 지은이 와타나베 기요시의 심정이 딱 그랬다. ‘어느 태평양전쟁 귀환병의 수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의 지은이는 참전을 위해 자원 입대했다. 신이라고 믿었던 천황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전쟁을 선포했던 그 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적장에게 예를 표하고 패전의 책임은 군인들에게 미룬 뒤 전후 새 헌법에 의해 국가의 ‘상징’으로 부활한다. 깨끗하게 자결하리라 굳게 믿었는데 말이다. 지은이가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처음엔 이런 상황을 빚어낸 천황을, 전쟁을 부추긴 언론을, 비겁한 지식인을 욕하다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의심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적인 천황을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을 탓하기에 이른다. 전우들이 숨져간 현장으로 끌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천황에 대한 복수는 한장의 편지와 돈이 전부였다. 군 복무기간 천황에게 받은 금품 4282엔을 돌려주며 “나는, 이로써 당신에게 빚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적어보낸 뒤 일본이라는 국가를 거부하는 삶을 산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당신들은 산산조각내버릴 신, 우상은 없느냐고. 일부 극우인사들에 의해 반인반신으로 추앙받는 박정희, 그가 이룩했다는 근대화, 유신과 반공….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묻고 따지지 않으면 지은이처럼 뒤늦게 후회한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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