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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문학의 뿌리는 죽음·부활의 기독교 실존주의”

등록 2017-05-18 19:39수정 2017-05-18 20:20

10주기에 연구서 ‘…문학과 사상’ 나와
‘희생양 예수’ 죽음·부활 구조와 유사
기독교 아나키즘과 에코아나키즘으로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
엄혜숙 지음/소명출판·2만3000원

대표작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비롯해 권정생(1937~2007)의 동화를 관류하는 주제가 ‘죽음’이며 그 바탕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기독교적 서브텍스트(내재된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어린이문학 연구자 엄혜숙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강사는 자신의 2010년 인하대 박사학위 논문을 손보아 낸 책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그는 “(권정생이) 기존의 아동문학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키고 그것을 깊이 천착함으로써 (…) 기존 아동문학의 동심천사주의적인 경향을 벗어나 아동문학의 외연을 크게 확장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져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온전히 새로운 ‘생명’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권정생 문학에 나타난 죽음이 오로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희생양 예수의 죽음’이 음각화로 존재”한다고 파악했다.

권정생의 10주기(5월17일)에 맞추어 나온 <…문학과 사상>은 권정생의 산문 문학 작품들을 초기(1969~1980), 중기(1981~1990), 후기(1991~2007) 세 단계로 나누어 죽음이라는 단일 테마가 어떻게 변화 발전하는지를 탐구했다. ‘강아지똥’을 비롯한 단편동화를 주로 썼던 초기에는 기독교 실존주의의 면모가 승했고, 소년소설과 소설을 많이 썼던 중기에는 기독교 아나키즘이 두드러졌으며, 판타지 작품에 주력한 후기에는 에코 아나키즘(생태 무정부주의)으로 나아갔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이다.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권정생 선생이 생전에 기거했던 단칸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은 그의 문학을 관류하는 주제로서 기독교적 죽음과 부활에 주목한 연구서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권정생 선생이 생전에 기거했던 단칸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은 그의 문학을 관류하는 주제로서 기독교적 죽음과 부활에 주목한 연구서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자신이 보잘것없고 쓸모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강아지똥은 제 몸뚱이를 녹여서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흙덩이의 말에 생각을 바꾼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평소 밤하늘의 별을 동경해 온 강아지똥은 자신을 희생해서 꽃을 피움으로써 스스로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런 강아지똥의 모습은 “자신의 죽음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한 예수의 모습과도 중첩된다”고 지은이는 적었다. 이처럼 “초기의 단편 동화는 죽음과 실존의식에 바탕을 두고 죽음과 원죄의식, 실존적 자각과 자기 결단, 확장된 삶의 지평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본다.

<몽실언니>와 <한티재 하늘>을 중심으로 한 중기 사실주의 소설들에서는 역사적 증언의식, 반전의식과 체제 비판, 상부상조와 생명존중 사상 등이 두드러진다. 극빈과 질병, 장애, 전쟁 등 죽음의 다양한 면모가 부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지는 민초들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생명’이 ‘죽음’을 이겨내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팔푼돌이네 삼형제> <랑랑별 때때롱> 같은 후기 판타지 소설들에서는 “분단이 사라진 통일 조국에서 사람들이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사는” 에코 아나키즘적 유토피아가 대안적 삶으로 제시된다. 한편 이런 시기별 특성과 함께 알레고리와 구술성(口述性), 그리고 상호텍스트성이 권정생 문학의 두드러진 미학적 특성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했다.

엄혜숙 강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모든 걸작의 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하셨던 지도교수 최원식 선생님의 말씀이 이 책의 출발이 되었다”며 “그러나 권정생의 동화에서 죽음은 무조건 부정적인 게 아니라 기독교적 부활로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권정생 문학 세계와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기왕에 논의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키르케고르적 기독교 실존주의와 톨스토이적 기독교 아나키즘과의 연관성을 밝히고 더 나아가 에코 아나키즘으로 나아가는 사상적 흐름에 주목한 연구로는 내 논문이 유일하다고 자부한다”고 덧붙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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