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인문학의 거짓말’ 펴낸 박홍규 교수
내년 2월 정년을 맞는 박홍규 교수는 지금 시드니 웹과 비어트리스 웹 부부가 쓴 책 <산업민주주의>(1897년)를 번역하고 있다고 했다. 출판사 아카넷과 계약을 맺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처럼 꼭 번역이 필요한 책인데도 아무도 하지 않아 직접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아나키즘 사상 뿌리로 중학생 때 간디 전기를 읽고 감명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직도 간디와 톨스토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박홍규 교수 제공
‘고전’ 무조건 권위부여는 반민주적
박정희 유신때 플라톤 예찬 대표적
“독재없는 세상 꿈꿔온 아나키스트” ‘진보서 보수로’ 부친 굴절 반면교사
1991년 번역 ‘오리엔탈리즘’ 자부심 고전에 무조건 권위를 부여하는 지적 권위주의가 득세하는 데는 대학에 몸담은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비판적 지식의 축적입니다. 지금 대학은 외국 지식을 급속히 빨아들이는 데만 급급해요. 비판적 기능이 거의 없어졌어요.” 아나키스트 박 교수의 눈에 지난 10년은 자신이 꿈꾸는 세상과 180도 반대의 길로 간 시간이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개인의 자유나 자치 확장과 정반대로 갔어요. 국가 권위주의가 노골적으로 강화되었죠. 저는 예전부터 교육부 해체 이야기를 했는데, 국정교과서를 만들었잖아요. 자유가 기본인 문화·예술을 권력으로 옭아매려 했고, 표현의 자유나 노동권 보장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문재인 정부 출범을 두고는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숨통이 트인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문 대통령이 공약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말하지 않거나 사드 문제에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것은 비판적으로 보고 있어요.” 그는 책에서 아버지와 겪은 갈등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몇 해 전 고인이 된 아버지는 4·19 때 교원노조 활동을 하다 5·16 쿠데타 뒤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 뒤엔 구미초교, 대구사범 선배인 ‘박정희 예찬론자’가 됐다. 4형제 중 장남인 박 교수는 유교적 가치관에 철저하고 정치적 보수인 아버지가 싫었다. 그가 지금도 외관에 신경 쓰지 않고 관혼상제나 동창회를 거부하는 데는 이런 반감이 작용했다. “아버지와의 갈등은 저에게 큰 짐이었어요.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점이 열등감이었어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도 컸어요.” 중학생 때 아버지의 책 보따리를 열어본 기억이 생생하다. “해방 정국 때 출판된 사회주의나 아나키즘 관련 책이 많이 쏟아졌어요. 중요한 책들이었죠. 30대까지는 진보적 생각을 갖고 계시다 그 뒤에 엄청난 굴절이 있었어요. 대구·경북 지역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이 지역도 4·19 전까진 진보적이었어요. 아버지처럼 굴절된 삶을 살아선 안 되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20년 전 농촌마을인 경북 경산시 압량면 당음리로 이사했다. 아내와 함께 300평가량 밭농사를 짓고 있다. 출근 전후 1시간씩 농사일을 한다. 휴대전화와 운전면허는 가져본 적이 없고 점심은 늘 도시락이다. 17년 동안 자전거로 출퇴근하다 3년 전부터는 산길로 1시간쯤 걸어서 학교를 간다. “길에 중앙선을 긋더니 갑자기 차가 많아졌어요. 너무 위험해 걸어다닙니다.”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인간관계를 통해 보수적 태도가 형성됩니다. 그런 모습이 보여 동창회에 발길을 끊었어요.” 수십권의 저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물었다. 뜻밖에 번역서를 꼽았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을 91년에 번역했죠. 그때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어요. 그 책 이후로 사람들이 오리엔탈리즘이란 말을 편하게 쓰고 있어요. 자부심을 느낍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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