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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광장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등록 2017-06-01 19:31수정 2017-06-01 19:47

문학3 2호
창비·8800원

2016년 가을 처음 점화된 촛불은 ‘광장’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광장에서 나온 목소리들은 단지 그 하나로만 수렴되지 않았다. 여성 혐오를 둘러싼 논란 등 광장 속에 있던 다양한 갈등 역시 잊어선 안 된다.

창비에서 만드는 문학플랫폼 <문학3>은 최근 낸 2호에 ‘주목-○은 광장에서 ○했다’란 제목의 기획을 실었다. 7명의 개성 있는 필자들이 이번에 열렸던 광장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풀어놓았는데, 이들은 주로 하나로 수렴되는 광장의 큰 목소리에 밀렸던 다양한 목소리들을 되새겼다.

연구자 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 편집위원인 신현아씨는 ‘광장의 스피커’를 통과하지 못한 목소리에 주목했다. 촛불집회 발언으로 ‘쏙고 아줌마’로 알려진 김경덕씨는 부산 가덕도 출신이다. 가덕도는 끊임없이 부산 중심의 국가 토건 사업에 수용되어 그곳 주민들은 “국가가 밀어내면 밀어내는 대로” 쫓겨야 했다. 네 시간이나 들여 서울로 올라와 촛불집회에 참석한 ‘가덕도의 딸’ 김씨는 강제 이주를 당하다시피 한 자신의 사정도 말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투쟁사에 관심이 없었다. 광장의 스피커는 그저 “새누리당밖에 모르고 속고 살았던 것”을 반성한 발언만을 재생산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신씨는 “지역의 투쟁을 증언하기 위해 광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광장에서는 이미 지역의 오랜 투쟁의 역사가 기입될 자리가 없다는 역설이 이처럼 먼저 도착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노동자, 성소수자 등의 목소리들도 “광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려진 것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광장에서도 여성을 비하하는 언어가 횡행하는 등 ‘여성 혐오’는 여전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공감보다는 ‘지나친 검열’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해일이 이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페미니스트 출판편집자인 김영선씨는 이런 상황을 되새기며 “여성은 광장에서 시민일 수 있을까” 묻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삭발을 한 ‘청소년’ 전서윤씨는 광장 속 연령 차별의 문제를 제기한다. 동등한 인격이 아니라 ‘대단한 애’로 보는 시선이 불편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는 ‘정치적 올바름’(PC)이 “갈등을 회피하는 기술”로 쓰이고 있지 않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소수자 혐오에 대한 대응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사실 소수자를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고정시켜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권력의 기술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광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 거기에 규범을 도입하는 것은 광장의 힘을 분열시켜 약하게 만들 뿐”이라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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