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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회 변동 읽어내는 열쇳말 ‘그로테스크’

등록 2017-06-01 19:31수정 2017-06-01 19:48

영화 분석으로 본 사회문화 읽기
질서-무질서 결합한 ‘그로테스크’
한국 영화 속 ‘괴물’ 형상도 제시
영화 <하녀>(1960)
영화 <하녀>(1960)
그로테스크 예찬
이창우 지음/그린비·2만5000원

‘그로테스크’란 말은 대체로 “우스꽝스러운 것, 추하고 혐오스러운 것, 기형, 낯선 것, 비정상”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문화연구학자·영화학자인 이창우씨는 새 책 <그로테스크 예찬>에서 그로테스크를 열쇳말로 삼아 한국 영화들 속에 드러난 사회변동의 모습을 읽어내려 시도한다. 영화에 드러나는 그로테스크는 “하나의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이행하는 사회문화의 동적 성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녀>(1960, 김기영)를 통해 개발독재 시대를, <301, 302>(1995, 박철수)와 <조용한 가족>(1998, 김지운)을 통해 1990년대를, <복수는 나의 것>(2002, 박찬욱) 등을 통해 2000년대 전반기를 읽어내는 식이다. 사회 곳곳에서 마주치는 ‘괴물’ 같은 현실을 떠올려보면 예상외로 납득하기 쉬운 접근법이다.

그로테스크는 비정상, 축제성, 숭고 등 세 가지 범주를 포괄한다. 그로테스크는 정상적인 규범을 위반하는 비정상적인 것에서, 웃음과 역겨움이 뒤섞인 민중의 축제 전통에서, 칸트의 논의처럼 거대한 공포 앞에서 느끼는 숭고의 감각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은이는 여기에 르네 지라르와 조르조 아감벤의 논의를 끌어온다. 지라르는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면 희생양을 통해 질서를 회복하는데, 이때 희생양은 환상적인 힘을 가진 ‘괴물’(질서의 수호자)로서 다시 자리를 잡는다고 봤다. 아감벤은 법질서의 효력이 정지되는 ‘예외상태’ 개념을 제시하고, 이때 질서화의 힘인 ‘주권자’와 무질서화의 힘인 ‘호모 사케르’는 마치 반인반수의 ‘괴물’처럼 서로 결합되어 있다고 봤다. 곧 “괴물이란 사회 해체의 경험과 지배 질서 구축에 관한 신념 사이의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소하는 예술 장치”다.

영화<조용한 가족>(1998)
영화<조용한 가족>(1998)
‘괴물’과 함께 지은이가 분석의 틀로 활용하는 것은 ‘근원적 세계’라는 개념이다. 근원적 세계는 영화 속에서 실제 환경이 가상화되어 드러나는 시공간으로, 괴물의 형상들은 이 속에서 의미있게 배치된다. 쉽게 말해서 그로테스크는 ‘괴물’의 형상, 곧 “사회가 위기를 경험할 때 대중이 상상하는 예외상태를 표현하는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질서화 경향과 무질서화 경향의 결합에서 나온다. “사회 상황 자체의 ‘괴물 같은’ 추세가 영화 텍스트 내부의 특정한 ‘괴물’로 응집됐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구체적인 분석을 따라가보자. <하녀>와 이를 변주한 영화들은 60~70년대 중간계급 가정에 하층계급 여성이 가정부로 들어온 뒤 그 집의 부인과 형성하는 적대관계를 주된 그로테스크로 삼는다. ‘하녀’는 중간계급 가정의 생산에 착취당하는 한편 왕성한 번식력으로 기존의 권력질서를 위협하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괴물이다. 중간계급 가정의 생명정치를 주관하는 ‘부인’은 이를 위협하는 ‘하녀’를 언제든 제거할 수 있는 ‘식인종’으로서 괴물의 형상을 띤다. 여기서 지은이는 당시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전사회적인 묵종, 부상하는 노동계급의 자신감과 중간계급이 느끼는 처벌의 공포 등을 읽어낸다. 생식력 또는 번식의 에너지를 은유하는 ‘성’이 그로테스크의 주된 모티프라는 점도 특징이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
90년대 영화인 <301, 302>와 <조용한 가족>은 각각 외환위기 전후의 사회 움직임을 드러낸다. <301, 302>에는 결핍을 상징하는 ‘거식증’에 걸린 여성과 탐욕을 상징하는 ‘요리강박증’에 걸린 여성이 나오는데, 마지막엔 서로의 합의 아래 요리강박증에 걸린 여인이 거식증에 걸린 여인을 잡아먹는 것으로 괴물의 형상을 드러낸다. 두 사람은 각자의 만족 속에서 먹고 먹히는 축제를 벌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강박에 빠진 이들의 자기 붕괴다. 지은이는 여기서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경계선상에서 나타나는 대중적 강박”을 짚는다. 권위주의가 끝난 뒤 짧게 이어진 호황 속에 개인이 능동적 주체가 되는 시대가 열린 듯했지만, 그것은 결국 결핍과 욕망을 개인에게 가둬놓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는 분석이다.

반면 산장을 개업한 가족이 영업을 계속하기 위해 시체들을 끝없이 파묻어 은폐한다는 내용의 <조용한 가족>은 외환위기 뒤 경제공황의 공포 속에서 나왔다. 영화 속 괴물의 형상은 경제적 압박에 내몰려 자살한 고객의 시체들과 이를 삼킨 가족과 산장 그 자체다. “식인주의적 산장은 자신이 억압해 온 호모 사케르들이 정말로 죽었음에도, 그치지 않는 배고픔 때문에 호모 사케르의 시체마저 먹고 자신도 호모 사케르로 전락하는 공황기 ‘자본=주권자’를 나타낸다.” 개발독재 시기에 유행했던 ‘성’ 대신 ‘식사’가 모티프로 쓰인다는 점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
지은이는 2002~2006년 사이 한국 영화에서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집중적으로 표현됐다고 본다. <복수는 나의 것>을 비롯해 <살인의 추억>(2003, 봉준호), <지구를 지켜라>(2003, 장준환), <시간>(2006, 김기덕) 등의 영화를 분석하는데, 이전과 달리 격렬한 사회갈등이 전면에 부각되고 그로테스크의 주된 모티프가 ‘식사’에서 ‘신체훼손’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절망한 노사, 투기 충동에 심취한 사회 여론, 국가 규제의 완화로 인한 치안 공백, ‘자본가 되기’ 열풍, 자기계발의 압박 등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불러일으킨 무질서한 사회경험들”이 각 영화에서 괴물의 형상을 만드는 주된 배경이 됐다고 풀이한다. 중요한 것은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무질서’의 경험들이 실은 세련된 지배 질서라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과거 체제에 대한 비판을 수행했던 ‘무질서=유동적 운동=축제’의 이미지가 21세기 초에는 새롭게 도래한 지배 질서의 위력을 나타내는 기호로 쓰이고 있다”며, 그로테스크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 새로운 사회비판적 이론과 실천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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