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작업장-스웨덴, 영국의 사회민주주의와 제3의 길
옌뉘 안데르손 지음, 장석준 옮김/책세상·1만8000원
‘제3의 길’은 전지구적인 관심과 사회민주주의의 진화인지 신자유주의의 변형인지 논쟁까지 일으키며 19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8년 터진 세계 금융 위기와 함께 급속도로 수그러들었다. 영국 노동당에서는 제3의 길에 대한 염증과 반발이 정통 사회주의자인 제러미 코빈을 당 대표로 만들었다. 단지 제3의 길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제3의 길 이후의 과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제3의 길이 겪은 여정은 중요하게 톺아봐야 할 과제들을 던진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유럽연구센터 연구원인 옌뉘 안데르손이 2010년 펴낸 <도서관과 작업장>은 스웨덴과 영국에서 나타났던 제3의 길이 무엇을 목표로 삼아 어떤 경로를 거쳤고 어떤 차이점을 보였는지 다면적으로 비교하고 검토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제3의 길은 근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 프로젝트와 연속성을 갖는다”면서도,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고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거칠게 말하면, 사회민주주의로 시작했지만 신자유주의로 흘렀다는 얘기다.
2015년 9월 영국 노동당 대표로 선출된 제러미 코빈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코빈의 당 대표 선출 배경에는 ‘제3의 길’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런던/AP 연합뉴스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유토피아적 비판과 자본주의를 바꾸려 하는 실용적 태도를 화합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효율성에 늘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번영’을 이뤄내는 한편, 정치적 타협을 통해 이를 개량하고 사회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려 했다.
이런 경로를 참고해보면, 1990년대 제3의 길 주장이 널리 퍼진 것은 ‘지식경제’라 불렸던 당시 자본주의의 현대화 경향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보 기술, 교육과 평생학습, 혁신, 기업가 정신 등 자본주의의 체제 변화에 조응해, 사회민주주의가 새롭게 ‘번영의 기관사’로 나선 것이다. 게다가 지식경제 담론은, 자본이 상품이 되고 노동이 가치 생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진보적인 비전까지 제시했다.
지은이는 스웨덴 사회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의 노선을 비교하는데, 제3의 길이란 표어를 먼저 내걸었던 것은 1980년대 스웨덴 사회민주당이었다. 당시 기세를 강화하던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개인주의가 제3의 길의 방향으로 주로 거론됐으나, 90년대에는 문화정책과 교육의 영역을 확장하는 등 연대, 평등, 사회보장과 같은 사회주의 고유의 가치를 다시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같은 스웨덴 지식경제를 대표하는 말로 지은이는 ‘도서관’을 꼽는다. 반면 지식경제에 대한 영국 노동당의 태도를 압축하는 말은 ‘작업장’이다. ‘기회의 평등’을 앞세워 개인적 능력과 생존을 강조하는 가운데 능력주의와 경쟁 관념이 자리를 잡았고, 개인의 경쟁력 제고와 복지를 연동시키는 ‘사회투자국가’ 정책이 추진됐다. 둘 사이의 차이는 크지만, 개인주의가 변화의 초점이라는 공통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가 지식경제에 대응하는 것 자체는 크게 잘못됐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지식경제가 실체 없는 거품, 즉 재계와 정치권이 야합해 자신들이 바라는 정치적 변화가 마치 필연적인 것인 양 규정하려고 전략적으로 꾸며낸 것 아닐까” 의문을 제기한다. 또 현실에만 매몰된 제3의 길이 ‘탈자본주의’의 대안까지 모색했어야 할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을 끝내 근본적으로 변질시켰다고 비판한다.
최원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