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지음/천년의시작·9000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이 싫어 고향을 떠났다/ 숙식을 찾아 도시의 거리와/ 골목을 헤매었다/ 낯선 이들을 만나/ 인연을 맺고 풀었다/ 여자와 살림을 차려/ 아들을 얻었다/ 웃는 날도 있었지만/ 우는 날이 더 많았다/ 영혼의 나무에/ 상처와 함께 옹이가 박혔다”(‘농부의 아들’ 전문) 이 시를 이재무(사진) 시인 자신의 60년 생애의 시적 요약이라 해도 좋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또한 ‘58 개띠’라는 유명짜한 또래 집단의 삶을 대표하는 초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열한번째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는 농부의 아들에서 도시의 시인으로 거듭난 그의 회한과 깨달음을 담았다. “뒤적인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은 자는/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이다”(‘뒤적이다’ 부분) “살구꽃 흐드러진 봄날/ 네게 엎지른 감정,/ 울음이 붉게 타는 늦가을/ 나를 엎지른 부끄럼/ 시간을 엎지르며 나는 살아왔네”(‘엎지르다’ 부분) ‘뒤적이다’와 ‘엎지르다’ 같은 동사가 그에게는 회한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개가 된다. 관계와 시간은 회한의 뿌리이자 숙주라 하겠다. 그런 회한에 시달릴 때면 그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공에는 실은 무와 허와 공, 다른 말로 무한이라는 존재의 본원이 가득 들어차서 그를 다독이고 이끌어 준다.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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