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난민 -한국의 난민 여성 이야기(마이너리티 리포트 1)
문경란 지음/서울연구원·1만3000원
“한국에도 난민이 있나요?”
2만명이 넘는다. 1994년부터 2016년 말까지 한국의 난민 신청자는 총 2만2792명이고, 이 중 난민 인정을 받은 경우는 3%도 안 되는 672명에 불과하다. 난민 인정률을 세계 평균으로 보면 우리의 열 배가 넘는 38%에 달한단다. 한국은 2013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난민법을 시행했지만 난민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다. 불쌍하다는 시선은 나은 편. 위험세력으로 인식하면서 경멸하고 낙인찍거나 적대감까지 보이는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도 만만찮다.
<우리 곁의 난민> 지은이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여성·인권 전문가의 눈으로 한국에 온 난민 여성의 구체적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술술 잘 읽힌다 싶어 책장을 넘기다보면 난민 여성들의 참혹한 체험들이 눈을 찌른다. 하지만 그들이 바로 우리 곁에 숨쉬고 있다는 사실과 이런 현실을 모른 채 지금껏 무관심하게 살아왔다는 자각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난민들은 대개 종교적 억압, 인종차별, 노동 착취, 전쟁, 정치적 탄압 등의 이유로 살던 땅을 떠난다. 난민 여성들은 여기에 할례, 가부장적 문화 등의 사유가 추가된다. 성차별, 성폭력, 가정폭력 같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다가 금전을 미끼로 한 성적 착취 또는 박해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일하랴 아이 키우랴 한국어를 못 배우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 탓에 난민 여성의 인권은 뒤로 밀린다. 지금 여기 한국의 시공간에서 그들은 ‘이웃’이 아니라 고립된 ‘점’으로 박힌다.
<우리 곁의 난민>에 수록된 일러스트. 난민지원단체 ㈔피난처 활동가 김보미씨 그림.
지은이가 심층 인터뷰한 7명의 난민 여성들 다수가 고학력자다. 미얀마 소수 민족인 친족으로 한국에 온 지 13년이나 된 소피아 킴(46)씨는 필리핀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지만 외국인 남성과 재혼한 이유로 정부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했다. 임시 체류 자격과 취업 활동 권리를 허가받았지만 ‘난민’이란 합법적인 정체성을 얻을 수 없었다. 엘리트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허드렛일을 해가며 월세를 내고 아이들을 키웠다. 주변의 도움으로 대학생이 된 딸은 엄마의 자부심. 베풂과 봉사의 삶을 꿈꾸는 당찬 2세는 이 땅에서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까.
러시아에서 제법 큰 장난감 회사의 무역 담당자였던 올가(39)씨는 나이지리아 남성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고 싱글맘이 되어 살다가 러시아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삶을 위협하는 공격을 받았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었지만 도망치듯 서울로 온 뒤엔 틈틈이 속눈썹 연장 출장시술을 하거나 엑스트라 배우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잘나가는 전통무용수였던 아만(36)씨도 난민이 돼 삶이 추락한 사례. 공연하러 한국에 왔다가 부당노동 피해를 입고 15년 동안 난민인정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무슬림 난민 여성 신디(30)씨는 베일 아래 얼굴을 감춘 채 다종다양한 폭력과 억압을 견디며 살아왔지만 딸에게만큼은 이런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그밖에도 할례를 거부하고 도망쳐 지옥 같은 난민 캠프 생활을 거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유랑하는 라이베리아 출신 마틸다(41)씨, 시리아 내전으로 고국을 탈출했지만 외국에 있는 남편과의 연결마저 끊어진 나디아(51)씨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리 곁의 난민>에 수록된 일러스트. 난민지원단체 ㈔피난처 활동가 김보미씨 그림.
이들은 대부분 ‘피해자’가 되기보다 용기를 지니고 분투하며 살아간다. 한국인들과 이웃하거나 교류하기 어려워 단절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친족 공동체의 힘을 받거나 한국인 단체와 공고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어려움을 극복해가기도 한다. 콩고 출신 미야(41)씨는 국립대학에서 마케팅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대사관 행정직원으로 일한 인텔리 여성. 스파이로 몰리면서 고국을 떠났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뒤 이주 여성과 함께하는 문화·경제공동체 ‘에코팜므’(http://www.ecofemme.or.kr)의 직원이 되어 그림을 그리고, 한국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난민, 인종차별, 국제적 분쟁, 콩고의 문학, 한국의 통일 등을 다루기도 한다.
“(경제적 문제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한국인의 무관심과 경계심, 차별적 대우와 혐오적 시선이 거두어지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밝힌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중앙일보 여성전문기자 및 논설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지냈다. 기자 시절 몸에 밴 맹렬함과 집요함이 인권과 젠더라는 전문성을 만나 복잡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 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는 “난민들에게 작은 환대를 베풀고 연대하는 것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국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꿈속에서까지 난민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도망쳤다는 지은이의 열정과 난민 여성들의 큰 용기가 만나, 보이지 않던 이웃들을 보이게 하고 목소리를 들리게 한 책이다. 서울시의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 기획으로 나온 ‘마이너리티 리포트’ 1권.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