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시대가 변한 건가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출판인들의 인기가 높아져 한 출판사 대표는 요즘 ‘비오는 날 막걸리에 부침개’라고만 써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서 ‘좋아요’를 수백건씩 받는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시대 변화를 실감한다며 “대선 이후 사회과학 도서가 너무 팔리지 않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편집자의 말도 들었습니다.
정치 권력보다 한번 굳어진 오랜 문화적 습관, 관념을 바꾸는 것은 훨씬 힘이 듭니다. 여성 작가나 지식인을 가리켜 ‘여류’라고 하는 표현은 멸칭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쓰입니다. <문학소녀>(김용언 지음, 반비)를 보며 지난 50여년 동안 ‘여류’ ‘문학소녀’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아온 전혜린과 수많은 문학소녀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도감을 함께 느꼈습니다. 그의 생애와 글을 실은 책들을 사서 지문조차 묻히지 않고 경전 읽듯 하다가 결국 어느 날 ‘청춘 끝, 어른 시작’이라는 각오와 함께 버리고 만 사람이 한둘일까요. 글 읽고 쓰는 여자들에 대한 외모·사생활 비평, 뜬 소문, 멋대로 써버리는 논평, 신기한 취급은 1920~30년대나 지금이나 믿기 힘들 만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내친 김에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를 꺼내 읽습니다. 1938년 이 책을 쓰고 3년 뒤 우즈 강에 투신해 세상을 떠난 울프와 몇번의 시도 끝에 삶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 수면제를 수십알 구했다며 기뻐했다던 전혜린의 이미지는 비슷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특별하게 예민하고 가녀린 정신을 가진 탓에 요절한 여성 작가들의 불행으로만 해석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여성 작가들의 책을 버리지 않고 다시 읽으며 재평가하는 기록투쟁, 해석투쟁 역시 시대정신이 아닐까요.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