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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 걸고 유배인과 교류한 제주목사의 유물

등록 2017-06-29 20:05수정 2017-06-29 20:45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자료집
편지 왕래 불안해 “불태우라” 당부
유배인이었던 오시복이 제주목사 이형상의 행정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의 편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유배인이었던 오시복이 제주목사 이형상의 행정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의 편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병와 이형상(1653~173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숙종 28년(1702) 제주목사로 부임해, 제주의 각 고을을 순회(순력)하는 장면들을 담은 <탐라순력도>를 남겼다. 이 그림첩은 300년 전 제주의 풍속, 지리 등의 정보를 포괄적으로 담은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그러나 이형상은 제주목사로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년 만에 관직을 박탈당했는데, 제주에 온 유배인들의 편의를 봐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관장 오경찬)은 이형상이 소장하고 있던 편지 67점을 모은 책 <이별의 한 된 수심 넓은 바다처럼 깊은데>를 최근 펴냈다. 67점 가운데 55점은 당시 제주 안덕면 감산에 유배되어 ‘위리안치’(죄인을 가시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됐던 이조판서 오시복(1637~1716)이 보낸 것이다. 오시복은 숙종 27년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절명한 뒤 궁중에서 장례복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내관에게 알아본 일로 숙종의 노여움을 샀다. 이 편지들은 오시복과 이형상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끈끈하게 교류했으며, 중죄인을 살뜰히 챙긴 죄로 제주목사가 파면되었다는 사실까지 밝힌다. 뛰어난 서예가였던 오시복의 아름다운 초서도 감상할 수 있다. 김익수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 우리말로 옮겼다.

유배인인 오시복이 제주목사직을 잃은 이형상에게 애석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유배인인 오시복이 제주목사직을 잃은 이형상에게 애석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오시복의 편지 내용은 시시콜콜한 유배인의 일상생활에서부터 행정에 대한 충고까지 다채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유배지인) 대정읍은 물과 토질이 나쁘고 한 칸짜리 살 만한 방이 있는 집이 없다고 합니다” 호소하는가 하면, 과거 유배인이 뇌물을 써서 읍 안으로 유배지를 옮겼던 사례를 들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대목도 나온다. 순력 때마다 각 고을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아 달라고 한다거나, ‘음사’(신을 모시는 사당)들을 불태운 이형상의 조처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전해주며 ‘잘하고 있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글과 선물을 주고받았고, 이형상이 오시복의 거처로 와서 3일 동안 함께 지내기도 했다. 이형상에게 <탐라순력도>를 제작하도록 권유하고 그 서문을 써준 사람도 오시복이었다는 사실도 편지를 통해 밝혀졌다. 실제로 편지에서 이형상이 벌인 사냥 행사에 대해 오시복이 “나중에 친지들이 그 성대한 거사를 볼 수 있도록 돌아와 화공에게 그리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안하는 대목이 나온다.

편지 왕래가 다른 이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편지를 불태우라”고 당부한 부분도 곧잘 등장하는데, 결국 이형상은 1703년 3월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사로운 무리를 두둔하고 보호했다”는 이유로 제주목사직을 삭탈당했다. 이형상이 육지로 돌아가고 오시복이 유배지를 옮긴 뒤에도 두 사람의 교류는 계속되었다고 책은 전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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