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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계경제 내년에 바닥치고 살아난다지만…

등록 2017-07-13 18:57수정 2017-07-13 19:02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
‘이윤율 하락 법칙’ 따른 세계경제 분석
“장기불황에도 ‘경제적 출구’ 찾을 것
자본주의 대체 ‘정치적 출구’ 모색해야”
장기불황-어떻게 일어났고, 왜 일어났으며, 이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마이클 로버츠 지음, 유철수 옮김/연암서가·2만3000원

영국 출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2005년 초에 2009년 출간될 저서 <대침체>를 쓰면서 “2009~2010년 경기는 바닥이 될 것이고, 1980~1982년 이후 볼 수 없었던 아주 심각한 경제침체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전세계 경제위기로 번졌던 것을 돌이켜보면, 주류 경제학과 달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분석은 꽤 정확했던 셈이다. 그는 2016년 펴낸 새 책 <장기불황>에서 이제 ‘침체’가 아닌 ‘불황’을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가 1873년 시작한 19세기 장기불황, 1929년 시작한 20세기 대불황에 이어 세번째로 찾아온 21세기 장기불황을 지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는 불황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을 ‘이윤율 하락 경향의 법칙’에서 찾고, 그것을 수많은 통계 등 경험적 근거들로 뒷받침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이윤율은 전체 자본 투자액 가운데 잉여가치(노동을 통해 불어난 자본의 증식분)가 차지하는 비율로 결정된다. 전체 자본은 생산수단의 가치(불변자본)와 고용된 노동력의 가치(가변자본)로 이뤄지는데, 자본가들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면서 투자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잉여가치율에 변화가 없으면 이윤율은 반드시 하락한다. 물론 새로운 기술 등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면, 곧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율이 높아지면 잉여가치율을 상승시키는 ‘상쇄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보다 더 크게 잉여가치율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7월, 조선업 불황으로 파산한 경남 통영시 신아에스비(SB)조선소의 도크와 장비들이 녹슨 채로 방치된 모습. 자본은 경기 침체 때 충분한 가치 파괴를 겪으면서 이윤율 상승을 위한 토대를 새롭게 마련한다. 통영/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해 7월, 조선업 불황으로 파산한 경남 통영시 신아에스비(SB)조선소의 도크와 장비들이 녹슨 채로 방치된 모습. 자본은 경기 침체 때 충분한 가치 파괴를 겪으면서 이윤율 상승을 위한 토대를 새롭게 마련한다. 통영/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윤율이 상승하면 자본의 축적이 증가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이윤율 하락을 이끈다. 이윤율이 하락하면 침체가 일어나는데, 이는 생산 비용과 자본 가치를 충분히 떨어뜨려 살아남은 기업들의 이윤율을 높인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런 이윤율 법칙에 따라 호황과 침체를 순환하는데, 이런 순환들은 단기적인 차원에서부터 장기적인 차원까지 다양한 파동을 그린다. 지은이는 현재 자본주의 경제가 모든 순환에서 하강 국면에 돌입한 상태, 곧 장기불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전체적인 이윤율 하락 추세, 앞선 19세기와 20세기에 일어났던 장기불황의 진행 과정, 그리고 2008년 경제위기 뒤 주요 경제국들의 상황 등 경험적 근거들을 두루 살핀 결론이다. 과잉 부채가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동안 착취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 이윤율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데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전세계 이윤율 변화 추이에 따른 현대 자본주의의 진행 과정. 에스테반 마이토의 연구 결과를 주된 자료로 삼았다. 출처 마이클 로버츠 블로그
전세계 이윤율 변화 추이에 따른 현대 자본주의의 진행 과정. 에스테반 마이토의 연구 결과를 주된 자료로 삼았다. 출처 마이클 로버츠 블로그
지은이는 “2008~2009년 대침체와 함께 시작된 현재 이윤율의 하강 파동은 1982년 시작된 콘드라티예프 가격순환의 하강 파동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며, 2018년이 지나서야 바닥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게다가 “또다른 큰 침체를 겪고 나서야 끝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자본주의가 유통기한을 다해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거나 ‘고장난 경제를 수리해야 한다’ 등의 주장들에 맞서, 이윤율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자본 스스로 기필코 극복하지 못하는 영구적인 침체는 없다”고 단언한다. 불황의 심연 속에서도 자본은 끝내 이윤율을 회복해낼 ‘경제적 출구’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기업들의 파산과 실업의 폭증, 실질적인 사물과 사람의 파괴가 대량으로 일어난 뒤에야” 가능하다. 지은이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온갖 모순을 지적하며 “오직 인간의 의식 있는 행동, 특히 대다수 사람들인 노동계급의 의식 있는 행동으로 자본주의를 새로운 사회구성체로 대체”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경제 자체의 법칙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정치적 출구’를 모색할 때에야 비로소 자본주의의 극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어판에 실린 서문에는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한국 경제에 대한 분석과 총평이 실렸다. “한국 자본주의는 지난 50년 동안 세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성공한 것 같지만, 이는 한국 인민을 희생시킨 대가였다”는 것이 주된 논지인데, 이는 한국 역시 이윤율 하락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스테반 마이토와 정성진 경상대 교수의 연구 내용을 보면, 한국의 이윤율은 1978년 꼭짓점을 찍은 뒤 2000년대까지 장기적으로 바닥까지 하락한다. 박정희 시대에는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율을 높여 이윤율의 하락을 막았지만, 이를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지은이는 한국의 이윤율이 꾸준히 하락하다가 2008년 세계 경제의 대침체 뒤인 2009년부터 경제 성장 자체가 멈췄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 자본주의는 이때부터 이 책에서 서술한 장기불황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독점재벌의 존재와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 등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이 앞으로 더욱 심각한 모순을 가져올 것이라 우려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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