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유숙열 외/이프북스·1만3000원
1997년 5월,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저널 <이프>는 ‘출사표’를 던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 특히 지식인 남성들의 공격과 비난이 시대 현상처럼 번지고 있다. (…) 중세에 불었던 마녀사냥의 광풍처럼 21세기의 미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사냥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우리는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이프는 페미니스트 저널이다.’”
2006년 완간을 선언한 <이프>가 창간 20돌을 맞아 기념 단행본을 냈다. ‘웃자! 뒤집자! 놀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허락받지 못한 페미니즘’을 실천하며 36권의 잡지를 한국 사회에 폭탄처럼 던졌던 ‘센 언니들’이 다시 뭉친 것이다. 제작비를 갹출해 출판사를 차려 그 첫 책으로 출간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20대부터 60대까지 페미니스트 26명의 글을 담았다.
“이제 막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드러낸 20~30대는 그 옛날 ‘쎄게’ 놀았던 언니들이 어찌 사는지 궁금하다고 했고, 그 ‘언니들’은 젊은 세대들이 어찌 그리 용감하게 세상에 페미니즘을 외치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책임편집자 조박선영 작가의 말이다.
유숙열 이프북스 대표(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왼쪽)와 조박선영 작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책은 대한민국에서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나 수십년을 생존한 여성 각자의 내밀한 기록이자 여성사. 욕망과 수치스러움 사이, 선택인지 강요인지 삶의 여정 굽이굽이 혼란을 느껴온 여성들의 고백은 힘이 셌다. “(각자의) 고백은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고백이 되어 돌아왔다. 두려움이 용기가 되어 돌아온 순간이었다.”(여성주의 모임 ‘강남역 10번출구’ 활동가 안현진) “나는, 아니 우리는 이토록 페미니스트 양성소와 같은 사회, 국가, 행성에 살고 있다!”(<지글스> 편집장 달리) “나는 가사 및 돌봄 노동에 재능과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 일을 떠맡은 상태였고, (…) 이번에도 최선을 다했다. 습관대로 성실했다. 그리고 많이 아팠다.”(<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 20~30대 후배들의 고백에 60대 ‘선배 페미니스트’들이 놀라 말했다. “바로 내 얘기야!”
남성들의 훈계와 입방아, 피해자 여성이 먼저 꺼내야 했던 화해 제안, 상대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하고 착취하는 ‘가스라이팅’ 속에서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돛단배처럼 외롭게 분투해온 이들의 체험 자체가 ‘페미니스트의 길’이었다. <여성신문> 이세아 기자는 상대의 폭력적 행위에 본인이 도리어 미안해하며 사과했던 일, “고통을 고통이라 하지 못하고 꿀꺽 삼켰”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힘들게 얻어낸 용기와 힘을 보여주었다. 국내 최대 음란물사이트 소라넷을 ‘아웃’시킨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하예나 대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남자들의 은혜를 모르는 괘씸한 여자들’이라는 글을 보고 한국 여성노동사를 죄다 뒤졌다. 똥물을 맞아가며 노동운동을 한 여성들, 가발공장·섬유공장의 10대 여공들…. “알고 보니 한국은 여자들의 피눈물로 세워진 나라라는 걸 덕분에 알았다.” 사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창간 배경에도 남성 작가의 ‘도발’이 있었다.
“1997년 이문열 작가가 <선택>이라는 책을 통해 ‘장씨 부인’의 입을 빌려 공지영·이경자 등 여성 작가들을 비난하면서 현대 여성들에게 ‘훈계질’을 했죠. 페미니스트들에게 도전을 한 거니까 응전을 해야 했습니다.”(유숙열 이프북스 대표,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신문기자(<문화일보>)로 일하던 유 대표는 95년부터 페미니스트저널 창간모임을 진행했다. 기자로 일하며 모은 거액을 종잣돈으로 내놓은 이도 그였다. 97년 창간호 특집은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 그는 당시 “<이프>와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여성계의 지지를 못 받았고, 외롭다고 느꼈다”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지금도 있다”고 말했다. 1세대 페미니스트 언론인으로서 그는 1980년 5·18에 연루돼 합동통신에서 해직된 뒤 미국으로 가 페미니즘을 공부했다. 미주 한국 신문사에 들어갔지만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또다시 해고됐고 91년 귀국해 막 창간한 신문사에 합류한 뒤에도 ‘노조의 대모’ ‘여성계에서 언론계에 잠입시킨 프락치’로 낙인찍혔다. 주류 남성 사회의 패권주의는 마녀사냥하듯 그를 흔들어 댔다. “주위엔 훌륭한 남성 선후배 동료들도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방송위원 임명장을 받았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꼬투리가 잡혔고, 한창 일할 나이 오십에 신문사를 떠나야 했다. 설상가상 <이프>조차 발행을 멈췄다. 몸과 마음 모두 아팠다. 유 대표도 활화산처럼 뜨겁게 살아온 ‘60대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조박선영 작가와 유 대표는 2년 전, 2013년께 해킹을 당해 너덜너덜해진 누리집을 새로 만들고 종로 인쇄소를 오가며 36권의 잡지를 피디에프 파일로 재생해 아카이브로 저장하면서 페미니스트의 경험과 역사를 복구했다. 새 누리집 ‘온라인 이프’(www.onlineif.com)를 선보였고 팟캐스트 <웃자 뒤집자 놀자> 채널을 만들었으며 20~30대 여성 작가, 저널리스트, 페미니스트 활동가를 불러모아 저변을 넓혔다. 유 대표는 “책을 만들면서 ‘어떤 페미니즘’이라도 열외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열외’야말로 분열주의자의 책동이니까요. 이 책은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당신을 페미니스트로 만든 건 무엇인가, 라고 물은 결과입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 책을 꼭 보길 바랍니다.” 창간 20년 만에 재탄생한 <이프>의 성인식이며 ‘두번째 출사표’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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