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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픈 사람이 잃는 것과 얻는 것

등록 2017-07-20 19:45수정 2017-07-20 20:04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봄날의책·1만3000원

서른아홉, 앞날 창창한 사회학자였던 그는 달리기를 하다가 돌연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이듬해에는 암이 발병했다.

“몸이 고장 나면 삶도 고장 난다.” 캐나다 캘거리 대학 명예교수인 지은이 아서 프랭크(71)는 <아픈 몸을 살다>에서 한창 때 꺾여버린 자신의 질병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자신 암환자이자 의료사회학자로서 현장연구하듯 “삶의 모든 측면을 건드”리는 질병 문제를 들여다본 것이다. 진단과 치료, 진료비와 의료시스템, 병과 낙인, 환자·의료진·보호자의 관계, 아픈 사람이 느끼는 절망감과 상실감을 섬세하게 밝히면서도 질병 자체가 “위험한 기회”일 수 있다는 점까지 아울러 설명한다.

1991년 발간된 책의 문제의식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의학적 언어로 측정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질환’(disease)을 다루는 의료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개인이 감내하는 ‘질병’(illness) 경험은 크게 변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거대한 종양이 있다고 말하는 의사의 기계적인 음성을 들은 순간을 지은이는 이렇게 표현한다. “내 몸은 바닥이 없는 모래 수렁으로 변했고, 나는 자신 안으로, 질병 안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수술과 거듭된 화학요법치료를 견디며 환자인 자신뿐만 아니라 보호자인 아내도 지쳐갔다. 아픈 몸을 다루는 무대의 주인공은 의료진이었고 환자의 생애사는 병원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생 가운데 아픈 몸만 똑 떼어 기계적으로 대상화하는 의료시스템, 병자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비난하는 주변 사람들, ‘암을 부르는 성격’이 따로 있다며 감정이나 생활방식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낙인도 어려움을 더했다.

더욱이 암환자들은 분노와 절망감을 억누르고, 용감하고 긍정적인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았다. 왜 화를 내서는 안되는가? 왜 아픈 사람은 사력을 다해 명랑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가? 지은이는 이런 환경과 조건들이 환자가 주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하는 ‘거래’의 일종이라고 본다. “힘든 순간에 필요한 것은 부정이 아니라 인정이다. 아픈 사람의 고통은 치료될 수 있든 없든 인정되어야 한다.”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을 죄책감 안에 가두고 “진짜 위험을 지속시키는 사회”에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병듦과 고통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은유적 관념, 노화·질병·장애·죽음을 은폐하고 외면하는 사회적 시각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질병을 경험하면서 자신도, 세계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는 지은이는 주변을 천천히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격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때로 반짝이는 햇살을 느끼고 비를 맞으며 몸의 경이로움을 인식한다. 배우자의 돌봄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가 환자의 곁을 지키면서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한다. 나아가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의 경험은 소중한 권리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거듭 설명한다. 아픈 사람들은 표현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는, “쌍방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고통을 체험하고 목격하고 공유함으로써 인간은 다른 사람과 자신이 연결돼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질병은 이 ‘우리 이상인 우리’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깨달음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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