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을 지운다
신좌섭 지음/실천문학사·1만원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를 낸 신좌섭 시인은 공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서울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주임교수라는 공식 직함이 있지만, 그보다는 시인 신동엽(1930~69)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독자들에게는 더 친근하게 다가올 법하다.
“가난 배어나는 논둑길 따라/ 주린 발길에 사상을 두레박 하던 당신/ 식민지 설움 담은/ 그 발길 닮으려고/ 오래도록 산천을 떠돌았네//(…)// 대지와 농사꾼/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두레마을/ 전쟁 통에도 열매는 익어가고/ 신념은 고난이 되었네//(…)// 당신이 앉았던 그 자리에/ 이제는 우리가/ 당신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네”(‘아버지의 옛집에서’ 부분)
이 시가 노래하는 아버지의 옛집이 신동엽 시인의 부여 생가임은 물론이다. 눈 밝은 이들은 이 시에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진달래 산천’ 같은 신동엽 시들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학생 때 고교 문예반 형들의 꼬임으로 시를 써서 교지에 발표한 적은 있지만, 그 뒤로는 시를 쓸 생각은 해 보질 않았습니다. 아버님이라는 그늘이 있기 때문에 더 그랬죠. 이번 시집에 묶은 시들도 혼자 써서 페이스북 친구들에게나 보였던 것들인데 이렇게 책으로 나오게 되었네요.”
26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의대 연구실에서 만난 신 교수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정말 제대로 된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첫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를 낸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 “저 자신 시를 쓰게 되면서 아버님(신동엽 시인)의 시를 다시 보니 시어들이 새롭게 와닿더라. 굉장히 많은 아픔을 겪고서 쓰신 시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신 교수가 50대 중후반 늦은 나이에 새삼 시를 쓰게 된 것이 아버지 신동엽 시인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들이 열아홉 생때같은 나이에 갑작스런 심정지로 숨을 거둔 일이 더 크고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던 2014년 11월의 일이었다.
“처음엔 그냥 고통일 뿐이었습니다. 뭐라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죠. 그러다가 한달 반쯤 뒤 나도 모르게 새벽에 일어나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어요.”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참척의 아픔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잊으려는/ 때론 잊고 싶은/ 잊지 못하는/ 차마 잊을 수 없는”(‘어찌 잊을까’)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시를 쓰는 일은 뜻밖에도 구원의 방도가 되었다.
“무언가에 씐 듯 시작한 건데, 돌이켜보면 시를 쓰는 일이 저에게는 자기 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 살아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표제작 ‘네 이름을 지운다’를 비롯해 시집 앞부분에 아들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토로한 시들이 집중 배치되어 있다.
“빗방울엔/ 어린 정령들이 숨어 있다// 허공을 떠돌던 작은 물방울/ 그리운 집/ 창을 두드린다”(‘빗방울’ 부분)
“내게로 오라/ 와서 나의 몸짓이 되어라// 꼼지락 발끝, 귀여운 미소/ 어린 나날의 자그만 흔적들// 차마 잊을까 밤새 뒤척인다/ 덧없이 짧은 생애를 끌어안고// 내게로 오라/ 와서 나의 사랑이 되어라”(‘내게로 와서 노래가 되어라’ 부분)
“껍데기는 가라”고 우렁차게 외쳤던 민족 시인을 아버지로, 월북한 좌파 농업경제학자 인정식(1907~?)을 외할아버지로 둔 신 교수 역시 서울의대 본과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10여년 세월을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전력이 있다. “꽃 몸 불태울 혁명을 다시 꿈꾸어야 한다// 전태일의 청계천 다리, 게바라의 모터사이클”(‘너무도 투명한 햇살’)이라든가 “120년 곤두박질치는/ 우금치의 원혼들이 세월호를 타고 간다”(‘잊히지 않게 하라’) 같은 대목들이 그런 전력을 짐작하게 한다.
“떠나가 버린 이들/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너무 일찍 떠난// 그들은 오늘도/ 나와 함께 길을 걸을 것이다”(‘비 내리는 날’ 부분)
“너무 일찍 떠난” 뒤에 ‘아들’이 생략되었겠거니와, 신 교수의 이 시집은 아버지 신동엽 시인과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아들 사이를 잇는 가교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 자신도 아직 싸우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사람들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지닌 시를 쓰고 싶어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