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회주의혁명·민주화운동…
‘세상 바꾸려 한 여성들’ 다룬
세 작품 저자들 한자리에
‘세상 바꾸려 한 여성들’ 다룬
세 작품 저자들 한자리에
1925년께 선배 여성 혁명가들이 청계천에서 찍은 사진을 재연했다. 왼쪽부터 <해월의 딸, 용담할매>를 지은 고은광순 평화어머니 대표, <세 여자>의 작가 조선희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영초언니> 지은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광통교 아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왼쪽부터 1920년대 ‘마르크스걸 트로이카’로 시대를 풍미한 여성 혁명가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1925년 늦봄부터 여름께 청계천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해 10월 <신여성> 단발특집호엔 이 세 ‘트로이카’의 단발 이야기가 실렸다. 당시 주세죽의 남편 박헌영,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 고명자의 애인 김단야 세 남자 역시 ‘트로이카’로 일컬어졌다.
“지금의 여성혐오와 갈등
평등·평화문화 못 익힌 탓
차별 없는 동학이 해결 열쇠” 서명숙(서) 두 사람이 기록에 대한 관심, 역사적 소명의식에서 출발했다면 나는 개인적 경험과 내 나름의 역사관으로 70년대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쓴 거예요. 25년 가까이 기자생활 하다 나와서 보니 영초 언니가 그렇게 대단했는데 아무 기록이 안 남아 있으니까 “이런 여자도 있었다”, “남자들만 민주화운동 한 게 아니다” 말하고 싶었어. 조 <영초언니> 읽으면서 이게 <세 여자>의 다음 세대구나 생각했어요. 나는 세 여자가 살았던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공간이 우리 역사의 가장 음침한 골짜기라 생각했는데 <용담할매>를 읽다 보니 그 세대야말로 최고로 비극적인 시대를 살았구나 싶더군요. 동학 여자들이 옥졸한테 팔려가고 진짜로 ‘헬조선’, 상상 초월의 ‘설화적 비극’이었더라고.
<해월의 딸, 용담할매>를 지은 고은광순 평화어머니 대표.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 작품 속 여성들 점점 진화
동학시절엔 가부장제 갇혔지만
일제·유신 땐 자기결정권 가져” 서 영초 언니는 72학번, 박근혜는 71학번이야. 박정희의 딸은 대통령이 되고, 박정희 독재에 항거했던 언니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눈도 안 보이고 당시를 기억조차 못하게 됐어. 그래서 내가 10년 전에 절반쯤 써둔 <영초언니>를 마저 쓰기로 결심했어. 하지만 3년 전 책을 내려는데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말렸어. 제주올레에 탄압이 올 거라고. 그래서 접었었지. 고은 내가 이화여대 사회학과 다니던 75년에 후배한테 유인물을 전해줬다 구속됐어. 그 뒤 79년 또 한번 구속됐는데 천영초씨랑 만나지 못했어도 그 이름은 바람결에 들었지. <영초언니>도 하룻밤새 다 읽어버렸어. 맞아, 우리가 그때 정말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 하하. (일동 웃음) 서 우리가 같은 시기에 다른 구치소에 있었던 거야. 나는 성동구치소, 광순 언니는 서대문구치소. 고은 경험들이 대동소이했어. 그때는 간첩을 만들어내던 시기였으니까. 물고문 할 때 “죽으면 38선 넘다 죽은 거라 하면 돼, 이년들아” 그랬는데 알고 보니 다른 여자들한테도 고문할 때 똑같은 소릴 했더라고. 조 <영초언니> 보면서 30년 전 한 장면이 떠올랐어. 나는 고려대 기독학생회였는데 78년 가을 대강당 앞에서 엄주웅 선배가 휘발유통을 끌어안고 연행되는 장면을 봤거든. 실패한 시위라 10명 정도가 지켜봤는데 책을 보니 명숙 언니도 바로 거기 있었던 거야. 나는 운동권 완전 주변부고 언니는 핵심이라 <영초언니> 보면서 그때의 상황들이 다 재구성됐지. 서 나는 올 1월에 최순실이 강제소환되면서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소리치는데 어떤 장면이 오버랩되더라. 그 옛날 서울지법 마당에서 영초 언니가 큰 소리로 “독재정권 물러가라! 민주주의 쟁취하자!” 그랬을 때 교도관이 입을 틀어막았는데 최순실은 입도 안 틀어막히고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야. 그래서 출간을 결심했어. 사회적 가치를 우위에 둔 여자들
<세 여자>를 쓴 소설가 조선희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진전 있지만 아직 갈 길 멀어
여자라는 이유로 죽기도 하니…
시대 넘어선 연대 필요한 때” 조 고명자는 친일잡지인 <동양지광>에서 일했거든. 하지만 나는 그녀의 친일에 연민을 느꼈어요. 해방되자 도망갔던 조선인 경찰들이 미군정 되면서 며칠 만에 다 돌아오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휩쓸면서 친일파들이 반탁 띠를 매고 부활하고 또 누군가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대통령 됐잖아요. 그래서 친일문제가 덮이면서 지금도 친일잔재 청산이 숙제로 남게 됐어요. 하지만 식민체제에 빌붙어 부와 권세를 누리고 동족을 유린했던 적극적 친일분자들과 이 땅에서 버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했던 사람들은 구분했으면 좋겠어요. 매체나 교육사업을 했던 기업가들도 친일 행적 때문에 그 후손들이 매도당하는 걸 볼 때 마음이 아파요. 구한말에서 해방공간, 전쟁 시기까지 살았던 세대에 대해 우리는 부채감을 느껴야 할 것 같아요. 이들이 견디고 살아 우리가 평화시대를 넘겨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은 사상도 분단도 자유롭지 않고 잘 관리되지 못한 거지. 해방공간이나 통일 여정에서도 얼마나 많은 잡음이 있었겠어. 지금의 여성혐오나 갈등도 평등·평화 문화를 익히지 못해서 몰이해와 공격성을 낳은 거거든. 동학은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지. 내 안에, 네 안에 하늘이 있고 세상만물이 귀한 것이라고 얘기하니까. 좌우나 성차별 문제도 그 속에서 편견 없이 토론할 수 있고 깊은 관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결혼식 남녀 동시 입장한 동학 조 우리 대학 때는 동학 공부가 유행이었어요. 민중운동의 원조로 의미부여 많이 했거든. <용담할매> 보면서 새삼 동학이 토착종교이면서 선진적인 거구나 느꼈어요. 어린이·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게 당시로선 얼마나 혁명적이었겠어? 동학도들은 결혼식 때도 남녀 같이 입장했다는데 난 너무너무 놀랐어요. 고은 신분과 남녀 차별이 없었던 동학교도들은 평등하고 평화로웠지만 일본 무기에 의해 절멸당했잖아. 그 뒤 등장한 신여성들은 자생적인 페미니즘이었을지 몰라도 단절된 역사가 있었어. 운동권 안에서도 남자들은 ‘진보마초’로 인간평등, 생활민주주의를 모르는 채로 살게 됐고. 요즘 페미니즘 책이 많이 팔린다잖아. 21세기 여성들도 여전히 답답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
<영초언니>를 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 여자>의 작가 조선희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왼쪽부터), <해월의 딸, 용담할매>를 지은 고은광순 평화어머니 대표, <영초언니> 지은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광통교 아래에서 ‘동학언니, 혁명언니, 민주언니’ 3대 100여년에 걸친 한국의 여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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