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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무도하가’ 새 해석…“전쟁 결단 뒤 숨진 귀족 기린 노래”

등록 2017-08-03 16:06수정 2017-08-03 21:18

이규배 고전문학자 논문서 주장
“백수광부, 제후·왕족 같은 고위직
민중이라면 ‘공’이라 안 불렀을 것
곽리자고, 뱃사공 아닌 거문고 예인
처음 채록된 책에 유사 단어 쓰여”
새로운 근거자료 충실해 파장 클듯
어문연구
어문연구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將奈公何)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로 알려진 ‘공무도하가’다. 백수광부(白首狂夫)가 물에 뛰어들어 죽자 그 처가 악기 공후를 타며 이런 노래를 부른 뒤 남편을 좇아 물에 빠져 숨졌고, 그 모습을 본 곽리자고(?里子高)가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자 여옥이 다시 악기 공후를 타며 같은 노래를 불렀다는 유래가 중국 자료에 전한다. 물에 빠져 죽은 백수광부에 대해서는 나라 무당(國巫)이라는 설이 학자들 사이에 지배적인 가운데, 백수광부 부부를 가난한 민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노부부의 말년과 사별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공무도하가’를 민중의 노래로 해석한 견해에 기댄 셈이다.

고전문학 연구자이자 시인인 이규배 성균관대 강사가 최근 ‘공무도하가’에 대한 이런 기존 해석과 전혀 다른 풀이를 내놓았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 학술지 <어문연구> 2017년 여름호(통권 174호)에 실은 논문 ‘‘공무도하가’ 재고(再攷) 시론(試論)’에서 그는 노래의 주인공인 백수광부를 제후나 왕족 같은 고위직으로, 그동안 뱃사공으로 알려져 온 곽리자고를 거문고로 명성이 높은 악인(樂人)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 노래의 핵심 어구인 ‘물을 건너다’(渡河)를 국경을 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사생결단의 행위로 보았다. 결국 ‘공무도하가’는 전쟁과 반란 같은 군사적 결단을 내린 끝에 숨을 거둔 고위직 남편을 기린 부인의 노래이며, 그 노래를 들은 거문고 예인 곽리자고와 처 여옥이 악기 공후에 얹어 부름으로써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논문 필자 이규배씨의 문제의식은 노래의 주인공을 이르는 한자어 ‘공’(公)과 같은 이를 가리키는 ‘백수광부’ 사이의 의미론적 거리에서 비롯된다. 벼슬 없는 일반 백성 또는 민중을 ‘공’이라 일컫는 게 어색하기도 하려니와, 같은 인물을 ‘백수광부’라는 비칭(卑稱)에 가까운 말로 표현하는 자료 사이의 불균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논문 필자는 “‘공무도하가’가 생성되었던 때와 가까운 시기의 기록으로는 (‘공’이) 임금, 천자(天子), 주군, 제후, 또는 그와 유사한 신분을 지닌 사람 등을 지시하는 단어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 노래 주인공을 높은 벼슬을 지닌 인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공은 왜 ‘광부’라고 지칭되었는가? 그가 광간(狂簡)한 성품을 지닌 이였기 때문으로 필자는 이해한다. “광간함은 즉 ‘뜻은 곧고 크지만 일처리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또한 “동일한 인물을 광부라 지시하여 서술하는 시각은 중국 한족의 채록자 시각이고, 공이라고 호칭하는 시각은 그 아내와 조선인 거류민들의 시각이다.” 고조선 사람들의 노래를 중국인들이 채록하면서 ‘공’과 ‘백수광부’ 사이의 차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고전문학자 이규배씨
고전문학자 이규배씨
‘공무도하가’를 전하는 중국 자료 <고금주>(古今注)에 곽리자고는 “조선진졸(朝鮮津卒) 곽리자고”로 설명되어 있다. 이 기록을 근거로 그동안은 곽리자고를 하급 뱃사공 정도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규배씨는 <주례> <예기> <국어> 같은 옛 문헌들에서 ‘졸’이 “백사람의 군졸 집단” 또는 “300호의 마을”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음을 확인하는 한편, ‘공무도하가’가 처음 채록된 후한 채옹의 책 <금조>(琴操)에서 도문고(屠門高)와 용구고(龍丘高)가 각각 ‘금인’(琴引)과 ‘초인’(楚引)이라는 노래를 지은 악인(樂人)인 것처럼 “곽리자고 역시 금(琴)에 능했던 악인인 것이지 도선장을 지키는 하급군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규배씨의 논문을 검토한 고전시가 전문가인 김학성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번 논문은 북송 진양(陳暘)의 책 <악서>(樂書) 중 ‘건무’(巾舞)에 관한 기록을 비롯해 새로운 자료를 충실히 확보해 획기적이면서도 타당성 있는 해석을 내놓고 있어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 같다”며 “다만, 나는 백수광부의 ‘백수’가 박수무당의 ‘박수’와 음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백수광부를 무당으로 보았는데, ‘백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등이 숙제로 남는 듯하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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