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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간의 역사는 곧 ‘몸’의 역사다

등록 2017-08-03 20:14수정 2017-08-03 20:18

미시사가들 ‘몸 기획’ 시리즈 2권
프랑스대혁명부터 1차대전까지
의료·성·위생·형벌 등 검토
몸의 역사2-프랑스 대혁명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알랭 코르뱅 외 지음, 조재룡·정숙현 옮김/길·4만원

흔히 인간의 몸을 인간 그 자체와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여기곤 하지만, 몸은 ‘주체로서의 몸’과 ‘대상으로서의 몸’, ‘개인적인 몸’과 ‘집단적인 몸’, ‘쾌락을 느끼는 몸’과 ‘고통을 느끼는 몸’ 등 다양한 생각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장소다. 그리고 몸은 역사의 시기마다 등장한 인간 문명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제공한다.

전체 3권으로 이뤄진 <몸의 역사>는 제목 그대로 서구 역사 속에서 몸 자체의 역사를 추려내는 방대한 작업이다. 2014년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를 다뤘던 1권에 이어, 프랑스대혁명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를 다룬 2권이 최근 번역되어 나왔다. 숨겨진 역사의 얼굴들을 새롭게 발견해내는 미시사 학자들이 몸을 주제로 삼아 내놓은 여러 연구 결과를 묶었다. 2권의 책임편집을 맡은 알랭 코르뱅 파리1대학 교수는 “주체로서의 몸과 객체로서의 몸 사이에, 개인적인 몸과 집단적인 몸 사이에, 안과 밖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들의 ‘다공성’(多孔性)은 정신분석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20세기에 더욱 세련되고 복잡해졌다”고 말한다. 그런 ‘다공성’은 18~19세기에 집중적으로 분출했는데, 2권에서는 근대 의학, 성에 대한 담론, 몸에 대한 예술적 상상력, 위생 담론, 체조와 스포츠의 발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를 다룬다.

19세기 화가 프랑수아 니콜라 오귀스탱 페이앙페랭의 ‘사체를 부검하러 가는 샤리테 병원의 프랑스 외과의사’. 이 시기에 이르러 사체 부검은 일반적 행위가 되었다. 길 제공
19세기 화가 프랑수아 니콜라 오귀스탱 페이앙페랭의 ‘사체를 부검하러 가는 샤리테 병원의 프랑스 외과의사’. 이 시기에 이르러 사체 부검은 일반적 행위가 되었다. 길 제공
코르뱅은 서문에서 “이 책에서 연구할 시대가 시작될 때의 몸은 ‘감각들의 장소’”라고 말한다. 18~19세기는 몸을 주체의 확고한 영역으로 봤던 과거의 전통이 깨어지고, 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경험이 폭증한 시대였다. 임상 의학의 발달이나 마취법 확산 등 근대 의학이 그 기저에 있다. 다만 지은이는 “19세기 의학은 하나의 방향만 정의했던 가능성의 영역을 더 활짝 열어놓았다”고 한다.

몸에 대해 출현한 관점의 독창성이나 새롭게 피어나는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당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몸을 치밀하게 감췄지만, 예술 분야에서는 낭만주의와 다비드파를 중심으로 누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등 몸에 대한 관심이 끓어올랐다. 다른 편에서는 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몸을 존재의 일상적인 조건 속에서 드러내고자 시도한” 귀스타브 쿠르베 같은 화가도 있었다. 낭만주의의 뒤를 이은 상징주의의 출현은, “몸을 하나의 가면이나 신비롭고 접근 불가능한 현실의 기호”로 인식하고자 했던 흐름을 보여준다.

쾌락을 중심으로 한 ‘몸들의 만남’과 고통을 중심으로 한 ‘몸의 아픔과 고통과 불편’(제2부)은, 몸에 대한 감각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이전 시대에는 몸에 고통을 가하고 그것을 전시하는 것이 처벌의 주된 목적이었으나, 이 시기에 그것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새롭다. 프랑스에서는 1788년 고문 행위가 폐지됐고, 유럽 각지에서 사형제가 사라졌다. 특히 단두대의 개발과 그 쓰임새의 확산은 눈여겨볼 만하다. 단두대는 몸의 고통을 ‘0’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고통을 수락함으로써 잘못을 속죄하는 기회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단두대의 확산은, 이전 시대에 연극처럼 과시하듯 집행됐던 사형 집행 의식 자체의 성격을 “공동체의 오점을 추방”하는 것으로 바꿔놓았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채석장 인부들’(1849). 쿠르베는 인간의 몸을 일상적인 조건 속에서 드러내고자 시도하는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길 제공
귀스타브 쿠르베의 ‘채석장 인부들’(1849). 쿠르베는 인간의 몸을 일상적인 조건 속에서 드러내고자 시도하는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길 제공
이 시대에 마취가 발달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1893년 의사 올리에는 “우리가 수술해야 할 수많은 신경병 환자와 신경쇠약 환자들을 볼 때 에테르 마취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취를 감춘 학살 장면, 단두대의 사용,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난 도축장 설치, 개인의 권리 상승 등의 시대적 요소들은 “고통과의 전쟁에 새로운 정당성을 부여하고 마취에 대한 요구를 격려한다.” 지은이는 “19세기는 인내의 한계가 낮춰진 시기”라며, 고통에 대한 전투가 “쾌락주의에 새로운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쾌락과 육체적인 향락은 더 이상 생식이라는 배경 속에서만 분석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한다. 이전 시기에는 없었던 새로운 ‘감수성’ 체계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들이 ‘몸의 역사’를 두고 이리저리 횡단한다. 앞서 나온 ‘고통과 쾌락을 인식하는 새로운 감수성 체계’는, 근대 의학에서 “다수가 개인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는 의료”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세균의 발견으로 출현한 ‘위생학’ 담론은 물의 사용을 부추겨 운하 건설이나 대중목욕탕 설치 등 공간의 재분배에도 영향을 줬다. 그야말로 ‘작은’ 사실들로 역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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