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단 한 번의 사랑>을 발표하며 <김홍신의 대발해>(전10권) 이후 8년 만에 소설로 돌아온 김홍신(사진)이 그로부터 2년여 만에 다시 한번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내놓았다. 고교생인 남자주인공 리노와 그보다 일곱살 연상인 모니카 사이의, 나이와 인습을 뛰어넘는 사랑을 그렸다.
성당의 복사 일을 하며 신부를 꿈꾸는 고교생과 성가대 반주를 하는 일곱살 연상녀가 서로를 세례명으로 부르며 연인 같은 관계를 이어간다는 설정은 파격적이며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리노가 신부 꿈을 포기하고 의대로 진학하기로 하면서 과외교사 격인 모니카와 단둘이 목장의 단칸방에 틀어박혀 생활한 한달 동안 육체적 충동을 애써 참아내는 데에서 보듯 이들의 사랑은 성숙하고 순수한 것이기도 하다. 소설은 리노와 모니카의 시점을 오가며 거의 평생에 걸친 두 남녀의 ‘침묵의 사랑’을 그린다.
“제가 어렸을 때 복사 생활을 했고 세례명도 소설 주인공과 같은 리노였습니다. 고2 때까지는 신학대에 진학해 사제가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좌절했고 그 뒤 의대에 지원했다가 낙방하기도 했지요. 이런 점에서는 이 소설을 자전적이라 할 수 있지만, 뒤의 이야기는 상상력을 가미한 허구입니다.” 8일 낮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인간의 영원한 숙제이자 해독제가 없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 모니카의 옛 약혼자가 목장에 출현해 신변을 위협하는 사건이 계기가 되어 모니카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로 하고, 리노 역시 고통과 방황 끝에 의대에 진학하고 의료 봉사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각자 가정을 꾸린 뒤에도 친구 관계를 유지하던 두사람에게 새로운 도전과 시련이 닥친다. 리노의 아들 시몬과 모니카의 딸 아녜스가 서로에게 호감을 품게 된 것.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맺어질 수 없는 속사정을 지니고 있었다.
“지난 소설 <단 한 번의 사랑>에서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 심사를 했다든가, 독립유공자 후손은 배고픈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배불리 먹고 고위직을 차지한다고 썼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게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영광스러웠어요. 제 아들도 ‘아버지가 블랙리스트에 안 들어갔으면 오히려 부끄러웠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예요. 오히려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살았구나, 우리 시대가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작가는 “고향 논산에 올 연말께 집필실이 들어서고 내년 말에는 김홍신문학관이 세워질 예정”이라며 “죽는 날까지 글을 쓰라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마지막 순간에도 만년필을 손에 들고 죽고 싶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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