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평론집 ‘페미니즘 리부트’ 펴낸 손희정씨
<페미니즘 리부트> 펴낸 손희정 문화비평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90년대·2000년대와 다른 특징 짚어
“소비자 정체성 뚜렷한 ‘리부트’ 현상” 지난 2년간 “미친듯이 써낸 글” 9편
386남성·민족·국가·종교 등 ‘도발’
“페미니즘은 전체 포괄하는 틀로 유용” 2015년 1월 “페미니스트를 증오하고 이슬람국가(IS)를 좋아한다”는 말을 남기고 터키로 떠난 김아무개씨(‘김군’) 사건 이후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사회 의제’가 되었다. 어느 팝칼럼니스트의 페미니즘 비하 칼럼, 해시태그페미니즘 운동(#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메갈리아 등장, 강남역 여성 살해(페미사이드), 문화계 성폭력, <시사인> 절독 사태, 넥슨의 성우계약 해지 등 수많은 페미니즘 관련 사건과 논란도 뒤따랐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지난 2년 동안 각종 매체와 온라인 여론을 들끓게 한 페미니즘을 둘러싼 지형도를 그리고 논란을 종합한 흔치 않은 단독 저서로서 의미가 크다. 책은 386세대 남성, 민족주의, 국가주의, 종교문제라는 ‘성역’을 모두 건드리며 도발했다. <까칠남녀>(EBS)의 패널로 방송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지만 손씨는 2년 전부터 책깨나 읽고 쓰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특히 201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 흐름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명명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영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 개념을 영화산업 용어에서 가져왔다. “‘리부트’란 기존 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몇몇 기본적 설정 아래 작품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는 것입니다. 2년 동안 온·오프라인을 넘나든 흐름 역시 페미니즘 리부트라 할 수 있지요.” 그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학가와 시민단체에서 활약한 ‘영페미니스트’와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을 구분한다. ‘지금, 여기’ 페미니스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 정체성”이라고 그는 말했다. 소비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해 페미니즘 서적과 문화상품을 구매하고 시장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점가에 ‘페미니즘 출판 전쟁’을 불러일으키고, 토론에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가진 ‘시민’”이자 “전복적 문화실천을 하는 소비자 주체”들로서 맹활약한다. 반면 자기계발로 성공하고 성취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신자유주의 여성성’도 나타난다. “지금 페미니즘의 한계를 질문하는 동시에 가능성을 말하고 싶었어요. 무조건 신자유주의와 연결시켜 비판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분석도 있는 그대로 현상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정치·경제·사회’라는 영역으로 분석하는 것 자체가 근대의 기획이고, 이를 넘어 전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전체를 포괄하고 포착하는 틀로서 ‘젠더’ ‘페미니즘’은 의미가 큽니다.” ‘혐오’라는 강력한 시대 감각을 뚫고 목소리를 내기로 한 여성들은 ‘페미니즘 리부트’로 대꾸했다. “광대한 네트”에 떠돌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계승되고 포함되기 시작하자 오히려 ‘젠더 전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는 혐오현상 발생의 원인으로 ‘87년 체제의 실패’를 지목했다.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87년 체제 이후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전후 정치·경제적 실패로 불안정한 삶이 확대되고 ‘인정투쟁’에 서로 내몰리면서 약자들에 대한 당대의 혐오가 ‘여성혐오’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 “한국 사회의 전환이 그야말로 혐오를 요청했다”고 그는 말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386 선배의 말 중 하나가 ‘90년대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서태지의 시대, 아이엠에프 시대를 아예 잊어버린 거죠. 2000년대의 ‘헬조선’은 ‘97체제’이지 ‘87체제’가 아니라는 것이고요. 하지만 자유화와 민주화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착종된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혐오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감정”이다. 혐오는 여성, 성소수자, 종북,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호남 등 사회적 소수자를 지목하고 배제했다. “한국 사회의 주류, 기득권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이들이 “차별의 주체”였고 ‘나도 너만큼 똑똑해’라는 나르시시즘, ‘당신은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자부심, ‘나는 소수이면서 정의롭고 옳다’는 자아 이미지, “이런 피해자 서사와 만난 나르시시즘 안에서 ‘어용 시민’이 탄생한다”고 그는 썼다. 이제 삶에서도 사이버 네트워크에서도 정치와 문화는 구분되지 않는다. “서점에서 정치인 컬러링북을 본 적이 있는데, 기겁했어요. 이제 정치 담론까지도 ‘소비되는’ 엄청난 문화상품이 돼버렸습니다. 이런 흐름을 ‘386 남성 정치인’들이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문제겠고요. 내용보다 ‘이미지’만 남게 되니까요. 나보다 약한 사람을 밟고 낄낄거리면서 ‘우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나의 고통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 정치세력화 아닐까요. 민주주의의 다양한 얼굴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지 브라이도티(여성학자)가 말한 대로 가시성은 권력이니까 말입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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