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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뻐겨봤자 한뼘차 “네 야만성을 알라” 야유

등록 2005-11-17 19:29수정 2005-11-18 13:59

위선적이고 야만적인 인간에 대한 지은이 스위프트의 혐오와 분노를 드러내는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대인국의 모험담을 다룬 단순한 어린이용 동화가 아니라 인간사회에 대한 조롱이자 질타이다. 그림은 소인국에 간 걸리버 여행기의 한 장면.
위선적이고 야만적인 인간에 대한 지은이 스위프트의 혐오와 분노를 드러내는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대인국의 모험담을 다룬 단순한 어린이용 동화가 아니라 인간사회에 대한 조롱이자 질타이다. 그림은 소인국에 간 걸리버 여행기의 한 장면.
우스꽝스런 인간세상 빗댄 소인국·대인국보다 허공에 떠있는 섬 ‘라퓨타’ 백미 사색만 하는 군상들 하수도 처박히고 벽에 찧고…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 풍자 혹세무민 오만한 ‘사’자 직업들 조롱거리

고전 다시읽기/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구전되던 러시아의 한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민담을 빌어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답하였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파멸하는가? 이에 대해 중세 기독교는 사람 마음속의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seven deadly sins)가 파멸을 초래한다고 설교하였다. 이 일곱 가지 죄는 6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언급한 이래 단테의 <신곡>을 포함하여 많은 중세 우의문학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죄로는 오만, 정욕, 분노, 시기, 나태, 탐욕, 탐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죄는 무엇보다도 ‘오만’이라고 보았다. 1726년에 출판된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도 이런 인간의 오만과 거기서 비롯된 반(反)이성적인 인간의 야만성을 조롱하고 풍자한 작품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인간이란 결코 ‘이성적인 동물’(animal rationale)이 아니며 다만 ‘이성적 능력이 있는 동물’(animal rationis capax)일 뿐이라는 스위프트의 인간 혐오를 잘 보여주는 공상소설이다. 위선적이고 야만적인 인간에 대한 작가의 혐오와 분노, 그리고 이런 인간 혐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빈번히 등장하는 배변과 성욕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는 이 작품이 단순한 아동용 동화가 아님을 말해준다. 소인국과 대인국을 중심으로 한 아동용 다이제스트 <걸리버 여행기>는 청교도적 정숙과 근엄함을 표방했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부산물이었다. 소인국·대인국에 이어 라퓨타 섬과 휘늠의 나라로 향한 걸리버의 네 차례 항해는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려는 스위프트의 풍자적 순례이자 처음부터 바로 우리 어른들을 향한 조롱과 질타의 여정이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인간이란 이성적 존재라고 부르기엔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한가? 또 그런 인간들이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추악한 곳인가? 소인국과 대인국 이야기는 크기를 바꿔놓고 바라본 인간과 세상에 대한 풍자이다. 아무리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자라도 크기가 아주 작아지면 그야말로 릴리펏(소인국)의 황제처럼 그 권위와 위엄이란 게 실은 우스꽝스럽다. 릴리펏의 황제는 자신이 다른 소인국 사람들보다 조금 더 키가 크다고 뻐기지만 그 차이란 12배나 커진 걸리버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70년간 정치싸움을 하고 있는 ‘높은 굽’의 트라멕산 당과 ‘낮은 굽’의 슬라멕산 당의 어마어마한 쟁점 차이도 실은 겨우 신발 굽 높이 정도이다. 더 나아가 릴리펏이 최대 적국인 블레프스큐와 벌인 오랜 전쟁의 원인도 거인인 걸리버가 보기엔 마찬가지로 보잘 것 없고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릴리펏의 황제가 앞으로는 계란의 큰 쪽 대신 작은 쪽을 깨서 먹으라는 법령을 강제로 선포하자 불레프스큐의 사주를 받은 일부 국민들이 계란의 작은 쪽을 깨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열렬히 저항한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학자들은 이 논쟁에 관한 수백 권의 진지한 책들을 썼다.

배변·성욕 노골적 묘사 인간혐오


반대로 걸리버보다 12배나 큰 브롭딩낵(거인국)의 황제에게는 걸리버가 자랑하는 유럽문명이란 게 가소롭기 그지없다. 소인국을 조롱했던 걸리버는 이번엔 바로 그 자신이 사악하고 간교한 인간으로서 조롱거리가 된다. 걸리버는 영국 휘그당과 토리당의 커다란 차이에 대해 열변을 토하지만 브롭딩낵의 황제에겐 그저 신발 굽 높이의 차이처럼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또 황제에게 화약의 위력을 설명하고 그걸로 반대하는 자들을 처치하라고 알려주자 황제는 기겁을 하며 이 보잘 것 없는 벌레 같은 존재가 그렇게 잔인하고 야만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황제는 걸리버에게 “너희 나라의 인간들은 대자연이 이제까지 이 지구상에 기어 다니도록 허락해준 작고 역겨운 벌레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족속”이라며 인간에 대한 경멸과 질타를 보낸다. 이 황제에게 인간의 이기심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유럽이란 그저 잔인하고 폭력적인 야만의 세계로 보일뿐이다.

인간은 지구상 가장 역겨운 벌레

그러나 사실 <걸리버 여행기>의 백미는 3부에 나오는 라퓨타와 발니바비 왕국에 대한 풍자라고 할 수 있다. 라퓨타란 발니바비 왕국 위에 떠 있는 섬으로 이곳엔 수학과 음악, 사색을 즐기는 왕과 귀족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이성을 맹목적으로 숭배한 나머지 늘 사색에 잠겨 있어 하인들이 옆에서 풍선으로 얼굴을 이따금씩 쳐주지 않으면 하수도에 빠지거나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집무를 볼 때도 하인들이 얼굴을 때려주지 않으면 백성들이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듣지 못하고 오로지 사색과 논쟁에만 빠져든다. 결국 현실적인 변화와 개혁을 도외시한 채 지배자들이 오로지 탁상공론과 추상적인 개념논쟁만 일삼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수도 라가도에 있는 ‘기획가 연구소’(Academy of Projector)의 많은 과학자들은 오로지 허무맹랑한 기획안만 연구한다. 가령 인간배설물을 분해하여 원래 먹은 음식으로 환원시키려는 연구에 수년간 매달리거나, 인간의 간편함을 위하여 모든 단어를 없애버리고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단어에 해당되는 물건을 직접 보여주자는 비현실적인 기획도 짜낸다. 그 가운데 교수 집단은 가장 병이 심각한 몽상가들이다. 한 교수가 반역죄를 미리 찾아낼 방법으로 의심스러운 인사들의 대변을 조사하면 된다는 학설을 발표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변기에 앉아 있을 때 가장 크게 정신 집중을 하기 때문에 반역을 꿈꾸면 변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학설에 대한 다른 교수들의 진지한 논문들도 넘쳐 나온다. 이런 이유로 발니바비의 백성들은 소위 이성적 사색에만 빠진 귀족들과 백성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몽상적 연구에만 매달린 학자들로 인해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헐벗게 된다. 물론 이것은 300년 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스위프트의 말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장 맹렬하게 궁정부패를 규탄한 자일수록 임용해주면 즉시 주인의 마음과 욕망에 가장 알랑거리는 쪽으로 급선회하긴 지금도 마찬가지다. 백성을 위한다며 선거철마다 열렬히 개혁을 외치지만 정작 당선되면 제일 먼저 변화시키는 건 자기들 생각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걸리버 여행기>에서 궁정을 제외하면 의사, 변호사, 교수들이 가장 빈번히 조롱거리가 되는 게 전혀 놀랍지 않다. 이들은 한결같이 겉으로는 가장 이성적, 합리적, 과학적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만의 오만한 지식으로 혹세무민하기 때문이다. 4부에서 만난 휘늠(말)에게 걸리버는 자기 나라의 법률가란 단지 받은 보수에 따라 검은 것은 희고, 흰 것은 검다고 증명하도록 젊어서부터 훈련받은 자이며, 의사란 오로지 예진 능력만 뛰어나 진짜로 환자의 병이 악화되면 얼른 죽음을 예진하여 자신의 진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들이라고 조롱한다. 마침내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온 걸리버는 도처에 넘쳐나는 비열하고 잔인한 야후(인간)들을 피해 여생을 마구간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리고 휘늠의 땅을 식민지 삼을까봐 영국 정부에 각서 제출도 거부한다. 왜냐하면 식민지 개척이란 문명의 빛이란 허울 아래 결국은 순박한 원주민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가장 비열한 야후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허무맹랑한 학설마다 논문 와르르

스위프트는 자기가 태어난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잔인하고 비열한 식민지 착취에 평생 분개했던 작가이다. 그가 보기에 인간이란 이성과 감성을 지닌 존재라고 하기엔 너무 오랫동안 약자들을 괴롭혔고, 유럽문명을 인류 진보의 빛으로 보기엔 세계 곳곳에 너무 많은 어둠을 만들었다. 스위프트가 혐오한 야후들의 이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인간이 끝끝내 야후로만 남는다면 결국 인간의 이런 야만성은 앞으로 스스로의 자멸을 초래할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 가운데 으뜸이 될 지도 모른다.

서평자 추천 도서

걸리버 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송낙헌 옮김

서울대 출판부 펴냄(1999)

(원문에 충실하고 풍자의 묘미를 잘 살린 번역)

걸리버 여행기

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펴냄(1992)

(풍부한 삽화가 담긴 완역본)

걸리버, 세상을 비웃다

박홍규 지음

가산출판사 펴냄(2005)

(스위프트와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담긴 평전)

50자 서평

◇ 허명수(37·삼성SDI 생산기술연구소 과장)“완역서에 이렇게 많은 생각과 고민이 포함돼 있는지는 미처 생각도 못 했다. 걸리버가 대인국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은 꼭 우리 삶을 보는 것 같다.”

◇ 카를(알라딘 마이리뷰에서) “스위프트는 전쟁을 일삼고 수많은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고 괴롭히는 유럽의 광기에 분노한다. 오늘날에도 이런 광기가 세계를 휩쓸고 있음을 알면 그는 또 얼마나 비통해할까.”

◇ 한승규(영풍문고 독자서평에서) “줄여 말하자면 성악설 정도 될까? 어찌 보면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결론이 정확히 딱 이렇다 할 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다음주 이후 고전 <도덕의 계보학>, <존재의 심리학>, <슬픈 열대>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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