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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등록 2017-08-17 18:56수정 2017-08-17 19:20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지음/문학동네·8000원

신철규(사진)의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소금기를 머금은 수분으로 흥건하다. 눈물이 이 시집의 주인이다. “우리가 평생동안 흘릴 눈물을 모은다면/ 몸피보다 더 큰 물방울이 눈앞에 서 있을 거”(‘무지개가 뜨는 동안’)라고 시인은 추정한다. 표제작 ‘슬픔의 자전’에서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 아이의 슬픔은 지구와 같은 크기로 측정된다. 차라리 지구 자체가 눈물 한 방울과 다르지 않다. 지구가 곧 슬픔이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등을 돌린 채 직사의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있다/ 죽은 물고기를 씻어내는 수돗물처럼 얼음 탄환이 쏟아진다”(‘연기로 가득한 방’ 부분)

“빌딩 유리로 돌진하는 여객기를 본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손톱이 등을 파고들 만큼 간절한 기도도/ 팔을 날개로 바꾸지는 못했다/ 깃털과 돌멩이와 인간은 다른 속도로 낙하했다”(‘구급차가 구급차를’ 부분)

물대포에 맞아 스러진 농민, 탈취한 여객기로 고층빌딩을 공격하는 테러가 지구를 슬프게 한다. “역전과 추월이 불가능한 세계”(‘다리 위에서’)가,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이 세계는 지옥”(‘생각의 위로’)이라는 절망이 지구를 슬프게 한다. 무엇보다 저 세월호의 무구한 죽음들이 신철규의 시집을 눈물로 적신다.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곳이 지옥이다”(‘검은 방’ 부분)

“눈을 뜨니 구명정 같은 구름이 떼를 지어 흘러가고 있다/(…)// 이 지상에 파견된 봄은 갈 곳을 몰라 서성거린다/(…)// 눈을 감으면 수면을 뚫고 수많은 소금 인형이 걸어나온다”(‘부서진 사월’ 부분)

지구를 대신해 눈물 흘리던 시인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묻는다. “여기는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당신은 괴물입니까 나는 인간입니까/ 우리와 세계는 한통속입니까”(‘밤의 드라큘라’). 그러나 이 절박한 물음조차 울음의 부력에 얹혀 잠시 떠올랐다가는 무겁고 불길한 눈물방울이 되어 다시 내리꽂힌다. 물음과 울음이 하나인 곳, 바로 우리가 사는 눈물방울 지구다. “물음 속에는 무수한 울음들이 있다/ 물음으로 떠오르는 울음/ 둥근 물방울이 검은 주삿바늘이 되어 땅에 꽂힌다”(‘밤의 드라큘라’)

그러나 눈물은 또한 정화의 능력을 지닌다. 눈물이 무거운 나머지 “엎드려 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급기야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눈물의 중력’). 그는 누구일까.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라는 구절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에 대응하는 인물임을 알게 한다. 이렇듯 눈물은 슬픔의 결산이자 구원의 출발이기도 하다.

최재봉 기자, 사진 최호빈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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