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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명말청초 사대부들의 내면

등록 2017-08-17 18:58수정 2017-08-17 19:25

증오의 시대·생존의 시대
-명청 교체기 사대부 연구 1·2
자오위안 지음,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1권 3만2000원, 2권 3만6000원

중국의 문학연구자 자오위안이 10여년 동안의 연구 끝에 내놓은 방대한 연구서 ‘명청 교체기 사대부 연구’가 두 권의 두툼한 책으로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넘어가는 시기에 주목해 당시 지식인들의 내면을 개인 문집, 서찰 등을 통해 그려낸 노작이다. 왕조 교체기를 다룬 1권에는 <증오의 시대>, 청나라 초기 한인 사대부들의 다양한 생존 모색을 담은 2권에는 <생존의 시대>라는 제목이 붙었다.

명나라 말엽은 중화문명이 절정을 이룬 시기이면서도, 정치의 포학함 역시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명말청초의 3대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인 왕부지(1619~1692)는 ‘지독한 미움’, ‘조급한 경쟁’ 등의 말로 이 시기의 지배적인 정서를 표현했다. 또다른 3대 사상가인 황종희는 명나라 황제들이 사대부를 ‘노비’로 길렀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지은이는 이처럼 가혹했던 폭정이 되레 당시 지식인들로 하여금 이상적인 정치와 이상적인 인격에 대한 추구를 독려했다고 짚는다. 더 나아가 “자학에 가까운 고행과 자신을 해치는 행위” 등으로도 드러났다고 한다.

<생존의 시대>를 관통하는 것은 ‘유민’(遺民)이란 개념이다. 지은이는 “‘유민’은 이 시기 사대부들이 고심하여 만들어낸 자기 모습이고 태도에 대한 자각적인 설계의 산물”이라고 본다. 옮긴이의 말대로 “충효를 국가 기본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던 유가 전제정권에서 다른 민족이 황실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연로한 어버이 때문에 많은 사대부들이 망한 왕조의 뒤를 따르는 ‘순절’을 포기했다. 일부 사대부들은 불교로 도피했는데, 그 가장 단순한 동기는 살기 위해서였다. 살아남은 일부는 생계의 곤란함을 겪기도 했다. 지은이는 “‘생계 도모’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과제가 유학자들이 지닌 사상의 은밀하고 미묘한 부분을 뒤흔들어놓았다”고 짚는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유민의 학술’, 특히 그 속에 담긴 명대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비판이다. “학술 가치의 창조는 명나라 유민이 기여한 특수한 공헌이었다.” 고염무의 <일지록>과 <군현록>, 황종희의 <명이대방록> 등은 ‘유민’ 사상가들이 자신들이 처한 시기에 대해 지녔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보여준다. 왕부지는 “제왕의 전통이 끊어져도 유학자가 여전히 그 도를 지키며 홀로 행하면서 아무 기대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도를 보존함으로 인해 도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유학자로서 당시 ‘유민’의 정신상태를 잘 드러낸 말이라 할 수 있다.

문집과 서찰이 주요 연구 대상이기 때문에 엄청난 분량의 인용과 주석이 읽는 이를 압박한다. 고문과 현대문을 오가는 서술도 까다롭다. 다만 그만큼 한 시대의 종합적인 모습과 그 속을 살았던 지식인들의 심성을 읽는 데에는 차고 넘치는 정보를 제공한다. 옮긴이 역시 “이런 점이 중국에서 이 책을 명말청초 연구자들의 필독서로 만들었을 것”이라 평가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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