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콩쿠르의 전 과정을 다룬 소설 <꿀벌과 천둥>으로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동시 수상한 작가 온다 리쿠. “정신적으로 강인하지 않으면 아름다워질 수 없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문학 제공
온다 리쿠의 소설 <꿀벌과 천둥>은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최초로 동시 수상하면서 올해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요시가에라는 가상 도시에서 펼쳐지는 피아노 콩쿠르의 참가 등록에서부터 1~3차 예선과 본선까지를 차례대로 좇는 실험적인 형식 안에 젊은 음악가들의 예술적 열정, 도전과 성취, 좌절과 성장을 실감나게 담아 호평을 받았다. 요시가에 콩쿠르의 모델이 된 하마마쓰 콩쿠르는 2009년에 조성진이 우승한 대회였고 온다 리쿠는 이 소설을 위한 취재 과정에서 조성진의 우승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한겨레>는 작가 겸 번역자 박현주씨와 현대문학 편집부의 도움을 받아 온다 리쿠와 단독 서면 인터뷰를 했다. <꿀벌과 천둥> 옮긴이 김선영씨가 번역에 도움을 주었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인가요?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되었는지요.
“평소에는 재즈와 클래식을 중심으로 팝송까지 비교적 폭넓은 장르의 음악을 듣습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테마로 한 음악소설을 써보고 싶었고, 이왕이면 시작과 끝이 명확한 피아노 콩쿠르를 무대로 삼고 싶었습니다.”
-첫 구상에서 출간까지 12년, 집필에도 무려 7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음악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도 제 스스로 오랜 시간을 들여 음악을 듣고 귀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각기 다른 음악과 연주자 간 차이를 언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무작정 곡을 하염없이 반복 청취해서, 거기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문장으로 바꿔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번 사용한 표현은 다시 쓰지 않을 작정이었기 때문에 괜히 더 고생했지요.”
-콩쿠르 일정을 순서대로 쫓으면서 소설적 갈등 구조와 주제의식을 살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같은 표현은 쓰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심사가 진행되면서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어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뒤로 갈수록 곡이 길어지다 보니 표현을 바꾸는 데에도 한계가 와서, 정말 고생했어요.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들을 오래 접하게 되면서 그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처음 정했던 프로그램의 선곡을 바꾸는 등 흥미로운 경험도 했습니다.”
-소설 주인공 가자마 진처럼 천재적 음악성과 독특한 개성을 지녔지만 기성 음악계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사라진 이들이 많다고 보십니까?
“예, 분명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를 직업으로 계속해나가는 건 정말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실감했습니다. 또한 피아노 콩쿠르의 역사를 봐도 지나치게 독창적이라 배제된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새로운 것을 평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어요.”
-가자마 진이나 에이덴 아야가 이른바 천재 부류라면 다카시마 아카시는 그 반대쪽에 서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성실함과 노력으로 재능의 부족한 면을 보완한달까, 아마추어리즘의 승리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음악과 예술의 세계에서는 이런 인물에게도 나름의 몫과 역할이 있을 듯합니다. 작가는 다카시마 아카시라는 인물을 설정할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요?
“천재만 등장하다 보니 가급적 제게 가까운, 평범한 감각을 가진 등장인물을 내세우고 싶었습니다. 예술에는 누구나 저마다의 방법으로 마주하는 기쁨이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다카시마 아카시를 그걸 표현해줄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작곡가나 연주가에 대해,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내는 사람이 아닌 원래 세상에 존재하는 음악을 발견해 전달하는 ‘매개자’로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띕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문학’이라는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미 ‘이야기’의 패턴은 세상에 전부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출이 다를 뿐이지, 과거에 선인들이 해왔던 일을 리뉴얼해서 다음 독자들에게 건네고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는 저도 한 사람의 매개자일지도 모릅니다.”
-조성진의 하마마쓰 콩쿠르 우승 장면을 보셨다고 했는데, 당시 연주가 어땠는지, 그리고 청중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를 회고해주신다면요?
“조성진씨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이 사람이 우승해도 놀라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일거라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싱그러운 가운데 이미 노련미도 갖추고 있어, 무척 강렬한 연주였어요. 청중들 반응도 뜨거워 앙코르 요청이 얼마나 열렬했는지, 조성진씨가 깜짝 놀라 무대에 나왔다가 얼어붙었죠. 그 반응이 귀여워서 청중들이 푸근하게 웃었을 정도였어요. 조성진씨가 인터뷰에서 청중들이 기뻐해줘서 행복했다고 대답했던 것도 기억합니다.”
-일본에서는 <꿀벌과 천둥> 속 연주곡들을 담은 클래식 음반도 발매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작품과 클래식 음악 양쪽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높이는 신선한 시도라고 보는데, 어떻게 이런 기획이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곡을 유튜브로 찾아 들어가며 읽었다는 분들이 제법 많아, 분명 수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많은 음반 회사에서 제안을 해주시더군요. 실제 곡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많았다는 게 기뻤습니다.”
-음악 또는 다른 장르 예술과 관련한 다음 작품 계획이 있는지요?
“발레에 대해 써보고 싶어서 지금 한창 준비하고 있습니다.”
-<밤의 피크닉>이나 리세 시리즈 등 학원물,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을 많이 써왔는데, 청소년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는 독자의 평가가 있습니다. 작가가 소년, 소녀 시절에 대해 느끼는 감상은 무엇인가요?
“제 소설에서는 ‘노스탤지어’가 하나의 테마인데, ‘노스탤지어’라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갖고 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소년소녀들이 본능적인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 있는 거죠. 그 감각을 되짚어보고 싶을 때, 청춘소설을 씁니다.”
-도시전설에 관심이 많고, <코끼리와 귀울음> 등 그를 소재로 한 소설도 많이 썼습니다. 도시전설의 어떤 점에 주목하나요?
“도시전설에는 시대나 세태에 대한 대중들의 무의식적인 불안이 나타납니다. 때문에 어째서 그런 전설이 생겼는지 생각하는 건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탐구하고 싶습니다.”
-환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유미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나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정신적으로 강인하지 않으면 아름다워질 수 없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매년 실감합니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깊은 존경심을 느낍니다.”
-그간 에스에프(SF), 미스터리, 판타지 등 다양한 색깔을 가진 작품들을 썼습니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 혹은 소재가 있다면요?
“몇 세대에 걸친 대하 낭만소설을 써보고 싶네요. 책 맨 뒤에 연표를 수록하는 게 꿈이에요.”
-신작 출간 소식에 많은 팬들이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을 사랑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항상 애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들으러 가고 싶다고 생각해준다면 기쁘겠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꼭 콘서트나 라이브를 직접 찾아가보세요.”
정리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