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강화길의 소설 <다른 사람>이 책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은 여성들이 겪는 유무형의 성폭력 실태를 고발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는 작품이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남성 지배가 공고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은 교묘하게 다채롭고 노골적으로 흉포하다. <82년생 김지영> 같은 소설이 이 시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다층적 차별을 부각시켰다면, <다른 사람>은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주목한다.
주인공 김진아는 회사 상사이기도 한 남자친구의 거듭되는 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지만, 회사의 여자 동료가 거꾸로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순식간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처지가 바뀌게 된다. 바뀐 인터넷 여론의 진원지를 찾고자 자신에 대한 글을 계속 검색하던 중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이라는 댓글을 발견하고 그 글을 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학을 다닌 지방 도시 안진으로 향한다. 11년 전 안진에서 자신은 정말로 거짓말쟁이로 통했고 같은 과 친구 유리는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소재로 한 소설 <다른 사람>으로 제22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가 강화길. “완벽한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쓴 게 아니라 나 자신 불완전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고민했던 것을 소설로 쓴 것”이라고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로부터 소설은 안진의 대학 시절로, 그리고 다시 고향 팔현의 소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진아와 주변 여성들을 괴롭히는 폭력의 구조와 원리를 다각도로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가해와 피해는 복잡하게 뒤얽히고, 어떤 여성들은 동료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공범이거나 적어도 방조자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남자에게 쉽사리 마음을 연다고 해서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얻었고 스물한살 겨울에 교통사고로 숨진 유리의 이야기가 소설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다.
“유리가 여자들을 망신시키고 다닌다던 말들. 그런 여자는 보호받을 가치도 없고 도와줄 필요도 없다는 말들. 여자들의 사생활을 입에 올리는 남자들을 비판하면서도, 유리를 비난하는 남자들은 내버려뒀어. 그 애는 여자들의 권리를 나누어 줄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단지 그 애는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걸 몰랐을 뿐인데 말이야.”
소설 말미에서 진아는 역시 과 동기인 수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 목말랐던 유리는 강간과 다름없는 관계에 자신을 방치했고, 진아와 수진 같은 여자 동기들은 그런 유리를 외면하고 멸시함으로써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그러나 진아가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직시하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구조적 성폭력과 관련이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거쳐야 했다. 그러기까지 소설 속 여자들은 서로 “다시는 너와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아”라고 관계 단절을 선언하거나 “너는 맞아도 싼 년이야”라는 막말을 퍼붓기도 한다.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다른 여성의 처지를 순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자신만은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 믿는 것이다.
고향 팔현에서 소녀 시절을 함께 보낸 진아와 수진의 관계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행실이 어지러웠던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천덕꾸러기로 성장한 수진과 그런 수진을 때로는 챙기고 때로는 내팽개치기도 했던 진아의 관계는 대학생이 되자 역전되고 만다. 수진은 누구나 선망하는 남자 동기의 연인이 되고 진아는 그런 수진을 질시한 끝에 거짓 소문을 퍼뜨리다가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히게 된다. 진아가 댓글을 작성한 범인으로 수진을 지목한 것은 그런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되면서 수진은 범인이 아니며, 수진과 진아는 둘 다 이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희생자임이 드러난다. 술에 만취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관계를 맺고 그 결과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여자들, 성병에 걸린 상태에서도 반강제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여자들, 폭행과 사과를 거듭하며 자신을 이해해 달라 주장하는 남자들, 자신의 몸과 감정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는 여자를 촌스럽다거나 피해의식이 있다며 매도하는 남자들, 강간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드러내기보다는 가해자의 상처를 부각시키는 소설들….
11년 전 유리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진아가 교수의 성추행에 맞서 외롭게 싸우는 여자 후배와 만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다” “이제는 네 차례다”라는 문장은 진아가 그 후배에게 건네는 선배의 조언이자 소설 독자에게 보내는 작가의 메시지로 읽히기도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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