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각 분야는 자신만의 특성과 규칙 안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때로 경계를 넘어 다른 장르와 만나고 부딪치면서 새로운 가치를 빚어내기도 한다. 1일 나란히 개막하는 전시 둘은 인접 예술 장르인 문학과 미술의 만남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문인들, 특히 시인들 가운데는 애초에는 문학이 아니라 미술을 전공 삼고 싶었다는 이들이 많다. 각자의 사정으로 결국 문학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미술을 향한 일종의 향수를 떨치지 못해 뒤늦게 재능을 발산하는 이들도 있다. 1~7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지하 다목적홀에서 열리는 문인화전 ‘붓을 따라 소풍 나선 시’는 문인들이 비장해 온 미술 재능을 뽐내는 자리다. 고은 홍일선 안상학 문동만 등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 14명이 글씨와 그림을 내놓는다.
등단 50주년 그림전을 열기도 했던 고은 시인은 무제 연작 석 점을 내놓는다. 종결어미 ‘라’와 ‘다’를 아래아로 처리한 “내일 떠나리라”와 “나는 빌지 않는다 꿈꾼다” 같은 글씨들이다. <한겨레>에 글그림 작품 ‘시인의 붓’을 연재 중인 김주대 시인도 ‘세한도’ ‘자목련’ ‘할머니 손’ 등 석 점을 내놓았고, 달그림으로 알려진 권대웅 시인 역시 ‘달연꽃’ ‘하얀 달공작’ ‘초록달 공작’을 출품했다. 김성장 시인의 ‘꽃무덤’은 한 획 한 획을 꽃잎 모양으로 처리한 글씨가 인상적이고, 이설야 시인의 ‘동일방직 다니던 그애는’과 ‘내 얼굴에 고양이 발자국 여럿’은 80년대 민중판화를 연상시키는 고무 판화에 붓글씨로 시 일부를 적었다. 2일 오후 4시30분에는 박남준 시 낭송과 김단아 노래 등이 어우러지는 개막 잔치가 열린다.
1일부터 24일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 그림전 ‘별 헤는 밤’에는 화가 여섯 사람이 윤동주의 대표 시 35편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나온다. ‘쉽게 쓰여진 시’ ‘참회록’ 등을 작업한 강경구, ’서시’ ’오줌쏘개 디도’(오줌싸개 지도) 등을 그림으로 옮긴 김선두를 비롯해 김섭·박영근·이강화·정재호가 참여했다. 이 전시는 10월20일~11월27일 교보문고 합정점과 12월19일~2018년 1월27일 용인문화재단 포은아트갤러리로 장소를 옮겨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 나온 그림과 윤동주의 해당 시들을 함께 실은 도록 <별 헤는 밤>은 시어 풀이와 해설 등을 곁들여 별도의 단행본으로 나온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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