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연구원은 <정치학>에 붙인 해제 첫머리에서 “여우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알고 있다”는 고대 그리스 서정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말을 인용했다. 하나의 체계적인 통일성을 구축하는 데 매달렸던 플라톤을 고슴도치에 비유할 수 있다면, 생물학적·경험적인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 관심이 컸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우에 비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체 저작은 모두 47권(이 가운데 16권이 위작으로 의심받는다)으로, 대부분은 학원 내부의 전문가를 상대로 한 강의용 논집(esoterica)이다. 로마 시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소요학파’)의 수장이었던 안드로니코스(기원전 125~68)가 편집한 것이 기초가 됐으며, 19세기 독일의 고전학자 이마누엘 베커(1785~1871)가 편집한 ‘프로이센 아카데미’ 판본의 편집 순서가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베커판의 편집 순서를 보면, 논리학에 해당하는 <오르가논>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자연에 대한 탐구에 해당하는 <자연학>을 비롯한 생물학 관련 작품들이 뒤를 잇는다. 말 그대로 ‘자연학 다음에 오는 것들’(meta-physics)을 의미하는 <형이상학>이 그 뒤에 온다. 그 다음에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등 실천적 영역에 해당하는 저작들이 온다. 마지막으로는 제작과 관련된 탐구에 해당하는 <수사학>과 <시학>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런 순서와 분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견지했던 학문 분류 방식과도 맞아떨어진다. 여기서 논리학 분야는 모든 학문을 위한 예비적·도구적 성격을 지닌다고 평가받는다. 형이상학, 신학, 수학, 자연학 등은 인간의 행위 가운데 ‘안다’와 관련되는 이론적 학문 영역이고, 윤리학, 정치학, 경제학 등은 ‘행한다’와 관련되는 실천적 학문 영역이다. 수사학이나 시학은 ‘만든다’와 관련되는 제작적 학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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