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나무연필·1만6000원 “와다 선생의 방향 설정은 잘못된 게 아닌가, 라는 것이 나의 논점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그는 선한 사람이다’라는 식의 반격은 논점에서 벗어난 것이고 (…) 악의적인 바꿔치기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 두 사회에서 모두 ‘타자’다. 그는 한국에서는 재일동포라는 국외자로,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소수자로 살아왔다. 한국에서는 두 형이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참혹한 곤경을 겪고, 일본에서는 차별과 배척을 받았다. 그의 가족사는 두 사회의 주류와 다수자들이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으려는 불편한 진실을 대면케 한다. 그가 겪는 신산한 삶은 전작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보여준 풍부한 인문학적, 문학적, 역사적 소양으로 승화됐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칼을 꺼낸다. 한일관계와 일본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양심을 대변한다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 대한 그의 직설적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가 이 책에서 건드리는 불편한 진실의 대상은 일본의 진보 진영이다. 그는 아베 신조 정권으로 상징되는 최근 일본의 퇴행과 반동의 책임을 우리에게는 진보 진영으로 인식되는 ‘리버럴파’에 묻는다. 그에 따르면 일본 사회는 1990년대 이후 긴 ‘반동의 시대’로 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까지의 ‘사회당·총평(일본노동조합평의회)’계 그룹, 신문을 예로 든다면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과 그 독자층으로 구성된 일본의 리버럴파는 일본 안팎의 조류에 붕괴했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동서 대립 구도의 종언, 신자유주의의 도래 앞에 투항한 것이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권위주의 체제가 동요하며 민주화가 진행된 결과,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봉인된 전쟁범죄 문제가 표면에 떠올랐다. 하지만 당사국 일본은 이 벡터가 역방향으로 향했다.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에,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천박한 구호와 함께 스스로 자기붕괴의 길을 택했다.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던 사회당은 보수 우파인 자민당과의 연립을 받아들였다가 결국 소멸로 갔다. 국가주의에 저항하며 일장기 히노마루와 국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던 교원노조는 이를 용인했다. 서경식은 위안부 문제를 제국 운영의 부수적 피해라고 주장하는 ‘박유하 현상’에 빗대 이를 설명한다. “박유하의 언설이 일본 리버럴파의 숨겨진 욕구와 정확하게 합치하기 때문이다 (…) 우파와 일선을 긋는 리버럴파 다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는 명예 감정과 옛 종주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적 특권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그의 이런 비판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와다 교수의 현실주의적 선회로 보면 이해된다. 와다 교수는 2015년 12월28일의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백지 철회하도록 하는 것은 ‘일의 경과로 보건대 어렵다’고 말한다. 새로운 해결안을 내놓게 할 힘이 일본 국내에는 없기 때문에 그 한일 합의가 개조·개선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책은 그가 최근에 쓴 일본에 관한 글을 골라 모은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놓고 와다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두 편의 글, 그가 소수자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애국주의, 개헌, 안보법제 문제 등을 해부한다. 그에게 일본 리버럴파는 두 나라와 그 관계의 미래를 위해 버리거나 매도할 수 없는, 아니 끝까지 같이 가야 하는 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경식의 불편한 진실 뒤집어내기는 결코 해코지가 아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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