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릴레오 시대, 공중위생의 역사에 관한 연구
카를로 치폴라 지음, 김정하 옮김/정한책방·1만5000원 유럽중세경제사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이탈리아 출신 학자 카를로 치폴라(1922~2000)가 1976년에 펴냈던 저작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치즈와 구더기>(카를로 진즈부르그), <마르탱 게르의 귀향>(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등과 함께 중세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재현해낸 미시사 연구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치폴라는 이 책에서 이탈리아 프라토 국립기록물보존소와 피렌체 국립기록물보존소에 보존된 수많은 역사기록물을 뒤적여 17세기 초반 중세의 도시가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전염병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생생하게 그렸다. 1629년 10월말, 토스카나 공국에 속했던 도시 프라토에 흑사병이 확산된다. 프라토 성채 내에는 6000명, 법적 권한이 미치는 주변 지역에는 1만1000여명이 살고 있었다. 프라토의 통치위원회는 보건위원을 임명하고 격리병원을 설치하는 등 대처에 나섰으나 상황은 절망적으로 흘렀다. 이때 보건위원으로서 활약한 것이 크리스토파노다. 그는 “감염 의심자들은 모두 22일간 격리시설로 보낸다”, “감염자들은 격리시설로 보낸다”, “격리시설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요양병원으로 보낸다” 등의 규칙을 세워 상황을 다스려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흑사병뿐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관료들, 부정부패, 재정문제 등과도 싸워야 했다. 책 자체의 내용은 짧지만, 철저하게 기록에 의존해 미시사에서 강조하는 ‘두꺼운 기술’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예컨대 당시 의료 시설이나 의사 현황이 어떤지, 흑사병 확산에 대해 각 도시의 행정 당국이 어떤 통지를 얼마나 신속하게 주고받았는지, 시신 매장인을 고용하기 위해 얼마나 월급을 올렸어야 하는지, 전염병이 도시의 재정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사망률의 추이는 어떻게 변해갔는지 등등 깨알같은 사실들이 제시된다. 크리스토파노가 직접 작성한 <보건서>를 비롯, 당시 집정관들이 남긴 기록 등 다양한 기록들이 서로 교차하며 17세기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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