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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열심히 사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바치는 오마주

등록 2017-09-07 20:12수정 2017-09-07 20:29

김종광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고단한 노동, 소시민의 행복 다뤄
“농촌 소설 ‘범골 연작’에 주력할 터”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
김종광 지음/교유서가·1만4000원

김종광은 1998년 ‘경찰서여, 안녕’이라는 인상적인 제목을 지닌 단편으로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햇수로 작가 생활 20년을 맞는데, 어린이·청소년 책을 포함해 지금까지 낸 책이 20권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작가 자신은 헤아린다. 그러니까 1년에 한권꼴. 그럼에도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가 그의 첫 산문집이라는 사실은 뜻밖이다.

산문집이라고는 해도 이 책의 대부분은 이른바 ‘짧은 소설’로 분류할 법한 이야기들이다. 작고한 최인호의 장기 연재물 ‘가족’에 이어 ‘이웃’이라는 주제로 월간 <샘터>에 5년 가까이 연재했던 글 43편이 그것들이다. 나머지 7편은 가족과 소설, 작가의 삶에 관한 자전적 글들.

책 맨 앞에 실린 글 ‘기다려, 내가 갈게!’에서 결혼을 하루 앞둔 남자는 결혼이 보장하는 것과 제한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새벽 한시에 예비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우리 관두자.” 남자의 말에 화가 난 여자는 “나, 결혼 안 해!” 소리 지르고는 휴대폰 전원을 꺼 버린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지만 이 커플은 그 정도가 심각했던 것. 이들은 결국 이대로 헤어지고 마는 것일까. 이야기의 결말은 오 헨리의 단편 ‘동방박사의 선물’을 떠오르게 한다. 사달이 벌어진 새벽, 남자는 여자의 집으로 여자는 남자의 집으로, 각자 상대의 안위를 걱정하며 달려갔다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는 이야기. 해피엔딩이다.

등단한 지 20년째에 첫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를 낸 소설가 김종광. “농촌 소설인 단편 연작 ‘범골 야담’을 한달에 한편 쓰고, 1년에 장편 하나를 쓴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등단한 지 20년째에 첫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를 낸 소설가 김종광. “농촌 소설인 단편 연작 ‘범골 야담’을 한달에 한편 쓰고, 1년에 장편 하나를 쓴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콩트라고도 엽편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짧은 소설들은 뜻밖의 반전 또는 깜짝 폭로로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이렇다 할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점이 상투적이지 않고 거꾸로 신선하다는 느낌을 준다. ‘소주 한잔 할래?’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찾겠다며 집을 나갔다가, 여자친구와 함께 다단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 끝에 15개월 만에 귀가한 아들과 아버지는 애틋함과 원망, 서먹함이 교차하는 탐색의 시간 끝에 “소주 한잔 할래?”라는 아버지의 말로 그 모든 감정을 털어 버리고 미소로써 화해한다. 서른살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1군 경기 유격수로 선발 출장한 야구선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 날아온 세 차례의 공을 깔끔하게 처리했다.”(‘최초의 선발 출장’) “오빠도 사장님, 언니도 사장님인데, 나는 사장님 애새끼들 똥기저귀나 갈아대는 인생”, 애보기로 청춘을 보낸 마흔살 여성은 운전학원에서 만난 첫사랑과 뒤늦게 불이 붙어 결혼에까지 이른다. 마지막이 통쾌하다. “내가 평생 부조나 하고 살 줄 알았지. 부좃돈 많이들 갖고 오셔!”(‘새로운 세상’)

“가깝고 먼 이웃들의 이야기를 이러저러하게 꾸며서 연재를 했습니다. 쓰는 동안이나 쓰고 나서도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이에요. 대학 시절의 ‘노가다’ 체험을 다룬 글도 몇편 있는데, 내가 아무리 어려운 척해도 육체 노동자보다는 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종광은 “인구주택조사원이나 피자 교육생 이야기 같은 건 아내가 몸으로 겪은 일들을 글로 쓴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벽돌 한 장의 무게’에서 벽돌 쌓는 일을 하다 힘에 부쳐 나가 떨어진 20대 초반 청년에게, 벽돌공으로 30년을 살았다는 50대 중반 사내는 말한다. “몸뚱이로 밥 벌어먹는다는 것은 제 살을 깎아 먹고산다는 말이거든요.” 자조일 수도 의기양양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쪽이든 이 말에는 삶의 엄숙한 진리가 들어 있다 하겠다.

“도시의 우울에 대해 아는 체하는 글은 더는 쓰지 못하겠어요. 앞으로는 고향 보령이 모델인, 백호리 범골을 무대 삼은 농촌 소설 ‘범골 야담’ 연작에 주력할 생각이에요. 이문구 선생님의 <우리 동네> 연작과 비슷하겠지만, 선생님의 소설이 농촌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연민을 표하는 느낌이었다면 제 소설에서는 평등한 시선으로 오늘의 농촌을 보려 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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