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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맞춤형 교육’ 품은 다산의 증언 모음집

등록 2017-09-14 18:48수정 2017-09-14 19:19

다산증언첩-한평생 읽고 새긴 스승 다산의 가르침
정민 지음/휴머니스트·5만2000원

강진에서 신산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황상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산석’(山石)이라는 자를 줬다. 스스로 “둔하고 막혔으며 답답하다”고 하는 황상에게 다산은 이런 가르침을 내렸다.

“외우는 데 민첩하면 소홀하고, 글짓기에 날래면 들뜨며,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칠다. 둔한데도 들이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고,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하며, 답답한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고 부지런하면 공부에 성취가 있을 것이라 격려한 것이다. ‘삼근계’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가르침은 <증산석>(산석에게 주다)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온다. 황상은 삼근계를 마음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매진했고, 60년이 지난 뒤에도 자신의 문집에 “지금 이후로도 스승께서 주신 가르침을 잃지 않을 것”이라 적었다.

10여년 동안 다산의 ‘증언’(贈言)을 발굴하고 연구해온 정민 한양대 교수(국어국문학)가 그동안 자신의 발굴과 연구를 집대성하는 성격의 책 <다산증언첩>을 펴냈다. ‘증언’이란 일반적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가르침의 목적으로 내려주는 훈계를 말한다. 다산은 평생 자식과 제자, 가까운 벗에게 많은 증언을 줬고, 특히 종이나 천을 오려 그 위에 직접 글을 써서 서첩으로 꾸며주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다만 다산 스스로 증언을 본격적인 저술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여태껏 증언 자체가 별도의 자료로 엮인 적이 없었다. 지은이는 다산 전집에도 실린 17종을 포함, 현재까지 발굴된 다산의 증언이 50여종을 훨씬 웃돈다고 헤아렸다.

신혼의 재미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한 황상을 꾸짖는 다산의 편지. <다산여황상서간첩> 수록, 다산 친필, 윤영상 소장. 휴머니스트 제공.
신혼의 재미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한 황상을 꾸짖는 다산의 편지. <다산여황상서간첩> 수록, 다산 친필, 윤영상 소장. 휴머니스트 제공.

지은이는 다산 증언들의 원문과 번역문을 싣고, 증언의 배경을 알 수 있도록 해설을 함께 달았다. 증언을 받은 이들은 여럿인데, 이들을 읍중 제자군, 초당 제자군, 승려 제자군, 집안 제자군, 벗 또는 후학 등으로 분류했다. 증언의 내용들은 수신자와 수신자가 놓인 상황에 따라 제각각으로, ‘맞춤형’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예컨대 황상을 그토록 아꼈지만 그가 신혼의 재미에 취해 공부에 소홀하자 다산은 “이렇게 할 것 같으면 어리석어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형편없는 인간(下愚)이 된 뒤에야 그치게 될 것”이라고 따끔하게 야단친다. 공부에 열심이지만 이기적이고 집착이 강했던 승려 제자 초의에게는 세상사가 얼마나 덧없는지 일깨워주는 이야기를 건넨다. 생계가 어려운 제자들에게는 “원포(園圃·과수와 채소를 키우는 밭)를 잘 경영하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지은이는 “증언은 다산의 제자 양성법 가운데 가장 막강하고 위력적인 교육방법”이라고 말한다. 증언은 다산의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자, “제자의 눈높이에서 그 시점에 도움이 될 만한 가르침을 맞춤하게 지적해준 내용이어서 오늘날 교육 현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새기기 쉽게, 증언을 주제별로 모아 다듬은 보급판 <다산의 제자 교육법>도 함께 펴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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