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헤겔의 ‘법철학’, 해방의 텍스트로 다시 읽다

등록 2017-09-14 19:50수정 2017-09-14 19:54

‘인정 이론’ 유명한 악셀 호네트
자유의지 실현 위한 원칙 되새겨
병리 현상 치유하는 ‘인륜성’ 주목
비규정성의 고통-헤겔의 <법철학>을 되살려내기
악셀 호네트 지음, 이행남 옮김/그린비·1만8000원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3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악셀 호네트(1949~)가 2001년 펴냈던 <비규정성의 고통>이 번역 출간됐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문제작 <법철학강요>를 새롭게 읽어내려는 시도가 담긴 책이다. 호네트는 주저 <인정투쟁>(1992)에서 예나대학 시절 청년 헤겔의 사유에 착안해 ‘인정투쟁’ 이론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은 그가 후기 헤겔의 사유까지도 자신만의 독법으로 읽어내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법철학>은 그동안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텍스트라는 비판을 받곤 했는데, 지은이는 여기서 ‘상호주관성’에 입각한 ‘자유’ 개념을 새롭게 제시할 단초를 발견해낸다. 최근 저작들인 <자유의 권리>(2014), <사회주의 재발명>(2016) 등으로 이어지는 교량 구실을 하는 책인 셈이다.

지은이는 “헤겔은 <법철학>을 통해 개인적 자기 실현(‘자유의지’)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 전체를 아우르는 근대 사회의 규범적 정의 원칙을 정초하려 했다”고 본다. 모든 주체들에게 동등한 자유를 보장한다는 자유의지의 기본 원칙은 칸트나 피히테 등 다른 사상가들도 공감했던 바다. 다만 헤겔은 오늘날 모든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현되려면 거쳐야 할 필연적인 단계들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철학(‘객관정신’)을 지향했으며, 특히 “개인적 자율성 또는 자유의 개념을 더 복잡하게 파악”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들과 달랐다고 한다. ‘추상적 권리/법’, ‘도덕성’, ‘인륜성’ 등 세가지 부분으로 나뉘어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법철학>의 전체 구성은, 자유 개념에 대한 헤겔 특유의 사유가 반영된 것이다.

지난해 4월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비판적 정치 서적에 수여되는 ‘브루노 크라이스키 저술상’을 받았다. 출처 위키미디어
지난해 4월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비판적 정치 서적에 수여되는 ‘브루노 크라이스키 저술상’을 받았다. 출처 위키미디어

‘추상적 권리/법’은 ‘법적 자유’에 해당하는 영역인데, 이것은 모든 주체들의 동등한 권한을 서로 인정하고 주체가 외부 세계에 대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여기서 타인의 자유는 자기 이해 관심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가능한 한 많은 행위 선택지를 열어두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곧 ‘나의 기본 원칙 또는 나의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중요치 않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온전한 개인적 자유를 위해선, 개인이 자기 자신과 맺는 특수한 형태의 관계를 다루는 ‘도덕성’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법적 자유’와는 다른 ‘도덕적 자유’의 영역이다. 이때 헤겔은 외부 세계에서 자립한 개인의 내부에서 초월적인 도덕의 원칙을 찾으려 했던 칸트를 비판한다. 사회적 관계들의 고유한 규범성 속에 이미 우리가 따라야 할 도덕적 규칙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인륜성’ 개념이다. 만약 그것이 현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엔? 그때에는 옳고 그른 것을 자기 내면으로부터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헤겔이 이 두 가지 자유 규정 가운데 하나만 홀로 절대화되는 경우 사회적인 병리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했고, ‘인륜성’ 개념에 ‘치료적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을 부각한다. 법적 권리에 따른 자유에만 집착한다면, 반대로 구체적 사회 현실과 분리된 도덕적 관점에만 붙들린다면, 인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규정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이 고통이 바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비규정성의 고통’이다. 헤겔은 이 같은 병리 현상을 자기 시대가 직면한 과제로 인식했으며, ‘인륜성’의 발굴을 통해 이에 대한 ‘해방’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것이 지은이의 핵심 주장이다. 또 “근대의 생활세계 안에 이미 자유를 보장해주는 상호작용의 유형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인식은 모든 개별 주체들을 소통적 관계 안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각종 사회적·제도적 조건들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나아간다.

야코프 슐레진저가 그린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초상화. 출처 위키미디어
야코프 슐레진저가 그린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초상화. 출처 위키미디어

한편 부족한 지점들에 대한 비판도 가차없다. “헤겔의 한계는 그가 개인적 자유의 조건들에 대해 지나치게 제도주의적 표상을 갖고 있었다는 데 있다.” 헤겔은 가족, 시민사회, 국가의 단계로 나누어 ‘인륜성’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논하는데, 너무 구체적인 제도들에 집착한 나머지 더 크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룰 수 있었던 성취들을 놓쳤다는 것이다. “헤겔은 국가 질서의 정당성이 모든 개별 시민들의 자유로운 동의에 달려 있다고 봤으면서도, 시민들에게 국가 질서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공적으로 협의하고 의견을 형성하는 집합적 역할은 허락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부록으로 실린 호네트와 옮긴이의 인터뷰는 호네트 사유의 궤적을 좀 더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이 사회가 정의로운가’ 하는 물음과 ‘이 사회가 개인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좋은가’ 하는 물음 가운데, 이 책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부정의’보다는 ‘병리학적 현상’에 더 초점을 맞췄고, “개인주의의 범람으로부터 유래하는 고통을 치유할 잠재적 자원이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일깨우는”(옮긴이) 작업이라는 것이다. 다만 호네트는 “미래를 지시하는, 아직 다 길어내지 않은 자유의 잠재력을 현전화해야 한다”며, 이 같은 ‘회고’ 작업뿐 아니라 ‘전망’ 작업이 함께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