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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레즈비언 딸 커플과 어머니의 동거

등록 2017-09-28 19:48수정 2017-09-28 20:09

딸에 대하여
김혜진 지음/민음사·1만3000원

노인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홀어머니의 집에 외동딸이 동성인 파트너와 함께 들어와 살게 된다. 딸의 성 정체성을 일시적 일탈로 여기고픈 엄마는 마지못해 딸 커플을 집에 들이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책임과 믿음을 나눌 수 있는 제대로 된 짝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세 여자는 과연 세대와 관습의 벽을 넘어 서로를 포용할 수 있을까. 김혜진(사진)의 소설 <딸에 대하여>는 레즈비언 커플과 그 어머니를 같은 생활 공간에 놓는 방식으로 동성애를 둘러싼 논란에 정면으로 맞선다.

“내 딸은 하필이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자신이 돌보는 치매 환자를 상대로 한, 독백에 가까운 이 말에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의 진심이 담겼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전직 교사 출신인 이 엄마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다고 생각할 정도로는 생각이 트인 인물이다.

어머니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소설의 다른 한 축은 그가 돌보는 노인 ‘젠’과 요양병원을 둘러싼 갈등이 차지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하고 활동했으며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자신과 상관 없는 이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다가 이제 무연고 치매 환자가 된 젠에 대해 주인공은 존경심과 보호 본능을 아울러 느낀다. 젠을 후원금 모금에 이용할 궁리만 할 뿐 경비 절감을 핑계로 열악한 처우를 강요하는 병원의 처사에 주인공은 분개하며 항의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도대체 이 여자는 어쩌자고 소중한 젊은 날을 그런 식으로 낭비해 버린 걸까.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세상일에 시간과 열정과 돈을 다 쏟아부어 버린 걸까.”

어머니의 심리 밑바닥에는 젠의 딱한 처지가 딸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불안 역시 도사리고 있다. 그 불안이 터무니없는 게 아닌 것이, 딸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직된 동료 시간강사의 구명을 위한 운동에 열심이다. 학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교직원 및 동성애 혐오 단체 회원들과 몸싸움을 하다 부상을 입기도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생각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 나는 저기 반대편에 모여 선 사람들처럼 말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애들에게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조용히 침묵하라고 명령하고, 죽은 듯 지내거나 죽어 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어머니가 막심 고리키 소설의 노동자 어머니처럼 자식의 대의를 선뜻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곧바로 행동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 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고집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마무리되는 소설이 불만스러운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망설이고 고민하면서도 조금씩 딸을 향해 다가가는 어머니의 느린 속도가 오히려 진정성과 사실감을 높이는 것 아닐까.

최재봉 기자, 사진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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