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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운명의 폭력에 굴하지 않은 비극적 숭고미

등록 2017-09-28 19:48수정 2017-09-28 20:06

윌리엄 트레버 소설 ‘루시 골트 이야기’
선의가 악의로 바뀌고 시간은 어긋나
‘작가들의 작가’다운 밀도높은 문장 일품
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지음, 정영목 옮김/한겨레출판·1만4000원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 우리 몫이 아닌 걸 훔치고 있는 거야. 달링 레이프, 우리는 기억으로 만족해야 돼.”

아일랜드 작가 윌리엄 트레버(사진·1928~2016)의 소설 <루시 골트 이야기>에서 주인공 루시는 연인 레이프의 구혼을 이런 말로 물리친다. 사랑이 자신의 몫이 아니며, 그럼에도 사랑과 결혼을 한다면 그것은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과 같다는 것, 따라서 지금의 짧은 사랑을 결혼으로 이어 가는 대신 두고두고 추억하며 음미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나는 우리 사랑의 기억이 전부인 삶을 살 거야.”

루시와 레이프의 사랑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야기는 소설의 시작이자 사랑에 관한 루시의 독특한 생각의 출발점인 십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일랜드 독립 투쟁이 한창이던 1921년, 잉글랜드 출신인 에버라드 골트 대위의 집에 불을 지르려 아일랜드 청년 셋이 침입하고 골트 대위가 쏜 총에 그중 한 청년인 호라한이 작은 부상을 입는다. 골트 대위가 청년의 집에 찾아가 용서를 구하지만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골트 일가는 안전을 염려해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집을 떠나기 싫었던 여덟살 루시는 이사를 앞두고 숲속에 몸을 숨기고, 바닷가에서 발견한 루시의 흔적을 근거로 외동딸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판단한 부모는 비탄 속에 이사를 강행한다. 숲속 은신처에서 사고로 부상을 입은 채 며칠 만에 발견된 루시는 하인 부부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지만, 결국 딸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믿은 아일랜드의 상황에 환멸을 느낀 부모는 일체의 연락을 끊은 채 해외를 떠돈다.

그러니까 레이프의 구혼을 거절하는 루시의 마음 밑자리에는 죄책감이 있다. 자신은 철부지 어린 시절 부모님께 고통과 슬픔을 안겨드렸고, 그에 대한 용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행복을 좇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다. 기억이 전부인 삶을 살겠다면서도 “하지만 두 분이 지금 오시면 (…) 그러면 너하고 나는 기억으로 만족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고 루시는 말하지 않겠는가.

ⓒ로드 스노든
ⓒ로드 스노든

그런 루시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절망 속에 해외를 떠돌던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뜨고, 아일랜드를 떠난 지 이십여년 만에 에버라드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공교롭게도 기다리다 지친 레이프가 마침내 결혼을 한 직후였다. 아버지와 맞닥뜨린 루시가 속삭이듯 내뱉은 말 “왜 이제야?”는 그렇듯 어긋난 시간과 운명을 향한 허탈한 항의의 소리였다.

“이건 우리 아일랜드의 비극이야.”

골트 집안의 하인 부부와 함께 어린 루시를 챙기는 변호사 설리번은 고아 신세가 된 루시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잉글랜드 출신과 아일랜드계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루시의 비극을 낳았다는 뜻이다. 선의를 배신하듯 닥치는 가해와 불행, 반쪽짜리 행복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잔인한 시차(時差), 게다가 너무도 늦게서야 용서를 구하는 호라한의 출현은 사회·정치적 토대라는 씨실에 성격과 운명의 비극이라는 날실을 직조하는 셈이다.

실제로 방화를 저지르고 그 결과 어린 소녀 루시를 불에 타 죽게 했다는 환각에 시달리던 호라한은 골트 대위의 귀가 직후 그 집을 다시 찾아 말한다. “매일 저는 그 아이를 위해 촛불을 켭니다.” 호라한의 진심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골트 부부와 루시의 파괴된 삶을 복원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루시는 가버린 남자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 장면이 거의 예외적일 정도로 루시는 매우 조용하고 금욕적으로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맞선다.

“왜 과거가 하찮아졌을까? 모두 사라졌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비가 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닮은 이 문장은 끝내 정신병원에 입원한 호라한을 수십년 동안 면회하면서 그의 영혼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루시의 행동을 가리키거니와, 루시는 결국 운명의 잔인한 폭력에 굴하지 않은 비극적 숭고미와 인간적 위엄의 주인공으로 승화한다. 단편소설 문장의 밀도로 장편을 밀고 나간 트레버의 필력은 그가 왜 ‘작가들의 작가’로 일컬어지는지 알게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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