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는 유작 ‘인간의 살림살이’에서 시장경제에 갇히지 않은 보편적인 인간 경제의 원리를 찾아내려 애썼다. 한겨레 자료사진.
헝가리 출신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1886~1964)는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체제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현실에 힘입어 ‘부활’한 사상가다. 그의 주저 <거대한 전환>(1944)은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서문을 품고 다시 출간됐고, 국내에서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번역 출간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80년대에 출간된 적 있는 유작 <인간의 살림살이>(1977)도 재출간됐다. 경제학자 이병천(강원대 교수)과 번역가 나익주가 새롭게 우리말로 옮겼으며, ‘칼 폴라니 총서’ 시리즈로 나왔다.
<인간의 살림살이>는 “보편적인 경제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인간의 살림살이 문제를 포괄적으로 재검토하려” 했던 후기 폴라니의 사유가 담긴 책이다. 해제에서 옮긴이 이병천은 “폴라니는 주류 시장경제학을 경제의 형식적 의미에 기반한 형식적 경제학이라 규정하고, 이를 실체적 의미에 기반한 실체적 경제학과 대립시켰다”고 풀었다. 곧 <거대한 전환>에서 ‘악마의 맷돌’이라 비판했던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라는 허구를 대신해, 폴라니는 “인간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질적 수단을 조달하는 행위”(실체적 비시장경제)로서 보편적인 인간 경제의 원리를 확립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경제의 위치’를 이론적인 주제로 다루는 1부는 폴라니가 출판을 염두에 두고 체계적으로 준비해뒀던 원고인 반면, ‘고대 그리스의 교역, 시장, 화폐’를 다루는 2부는 컬럼비아대에서 했던 강의록 등을 폴라니 사후 편집자가 엮은 것이다. 특히 옮긴이는 “폴라니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 아니라, (사회에) 착근된 시장과 그것과 결합된 참여적 민주주의를 주창한다”고 짚는 등 2부의 논의들 속에서 폴라니 사유의 좀 더 다양한 면모들을 발견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오는 10월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시청 신청사 8층에서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와 서울특별시가 함께 주최하고, 한국의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함께 주관하는 ‘제14회 칼폴라니국제학회’가 열린다. 해마다 열리는 폴라니 관련 학술행사인데,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칼 폴라니의 딸인 캐리 폴라니 레빗(맥길대 명예교수)과 마거릿 맨델(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이 각각 ‘폴라니와 21세기’,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이란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할 계획이다. 행사 관련 문의는 02-383-3457.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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