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이야기 1~11
공원국 지음/위즈덤하우스·각 권 1만5000원
중국 춘추전국시대나 삼국시대처럼 수많은 세력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군주나 재상, 장군 같은 이야기 속 영웅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본다. 그러나 냉정하게 볼 때,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저 평범한 군사일 확률이 높다. 아니면 힘겹게 병영을 탈출한 도망자이거나.
최근 11권으로 완간된 <춘추전국이야기> 시리즈는 ‘제왕들의 행위’에 주로 초점을 맞췄던 기존 역사서들과 달리 ‘보통 사람들’(인민)이 살았던 그 시대를 좀 더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역저다. 7년에 걸쳐 시리즈를 완성한 ‘여행하는 인문학자’ 공원국(43) 작가를 지난 1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 상주하며 ‘유목’을 주제로 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시리즈 완간을 계기로 잠시 한국에 들렀다.
<춘추전국이야기> 11권을 완간한 공원국 작가가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처음에는 춘추전국시대부터 현대 중국까지 통사로 다뤄보자는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춘추전국시대를 다루는 데에도 이렇게 힘이 많이 들었으니, 정말 불가능한 생각이었던 셈이죠.”
기존의 역사 서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매 권마다 나름의 중심 주제들을 세우고 새로운 자료나 연구 성과를 반영하는 일에 특히 집중했다고 한다. 1권에서 각 권마다 어떤 주제들을 다룰 것인지 대강의 구상을 밝혔었는데, 실제 결과물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1권의 주인공은 제(齊)의 재상 관중이다. “관중은 스펙트럼이 무척 넓은 사상가로서 춘추시대의 질서를 크게 잡아간 사람입니다. 관중 이후로는 점점 더 억세고 싸움을 심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죠.” 때문에 패자(覇者)로서 ‘영웅 시대’를 연 진(晉) 문공이 2권의 주인공이다. 3권에서는 노자와 초(楚) 장왕 등 중국 남방 문화를 중원으로 연결시킨 대표 선수들에 주목했다. 4권의 주인공은 정(鄭)나라인데, “패권 시대에 가장 중간에 낀 나라로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국제정치의 측면에서 접근했다. ‘오월쟁패’(吳越爭覇)를 담은 5권은 배신이 난무하고 점점 더 잔인해지는, 전국시대로 가는 길목을 다룬다.
6권에서는 필자의 사회로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플라톤과 함께 가상의 토론을 벌이는데, 작가 스스로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7권은 전국시대 초기의 개혁가 오기의 등장과 그의 실패, 이로부터 ‘법가적 개혁’의 영향을 받은 진(秦)의 득세를 다룬다. 이야기는 진을 견제하기 위한 ‘합종연횡’(8권)을 거쳐 이에 맞선 진의 외교전략을 다루는 ‘원교근공’(9권), 끝내 진이 군대로서 통일을 이뤄내는 ‘천하통일’(10권)로 치닫는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초한쟁패’(楚漢爭覇)를 거친 한나라의 탄생(11권)으로까지 이어진다.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이유가 있다. “진과 한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진은 가혹한 법치를 앞세워 전국을 통일했고, 한 역시 진의 법률체제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기에 흔히 ‘진한’(秦漢)이란 말로 한데 묶인다. 그러나 공 작가는 “운영하는 사람이 달랐다”고 짚는다. 한 고조 유방은 부역과 징세를 줄이고 잦은 사면을 베풀었는데, 이는 사실상 “법 적용을 완화하고 법을 정치와 경제에 종속시키려” 했던 노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진에 견줘 한의 형벌이 크게 줄어든 것도 기록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공 작가는 “그냥 ‘사람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려고 했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선, “덜 시달리고, 덜 싸우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정하는 사람들을 높이 살 수밖에 없다.” 전체 시리즈가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긍정하는 시대의 질서를 세운 관중으로부터 시작해 인민의 마음을 얻어 제국을 세운 유방으로 끝맺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엔 법치를 강조하며 다방면에서 ‘진나라 띄우기’ 모습을 보이는 최근 중국에 대한 우려도 서렸다.
‘마왕퇴 백서’, ‘오자서병법’, ‘손빈병법’, ‘수호지진간’ 등 온갖 죽간이나 명문, 석비 자료들을 파고들어 동원 가능한 최신의 연구 성과들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의 지리와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깊은 천착도 자랑할 만한 바다. 공 작가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며 귀족사회 특유의 중층적 지배구조가 해소되고 평민사회가 도래했는데, 이는 문명 수준에서 동양이 서양을 역전하는 배경이 됐다”고 짚었다. 못내 아쉬운 점은 애초 다루려 했던 ‘북방민족사’를 담지 못해 12권이 아닌 11권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한 것이다.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고학적 출토 결과를 함께 꿰는 안목이 중요한데, 저에겐 그것이 역부족이었어요.”
<춘추전국이야기>는 중국으로 ‘역수출’될 예정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출판집단으로 꼽히는 강소봉황출판집단 산하 역림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었고, 중국어 번역을 마친 뒤 현재 감수 단계에 있다.
공 작가가 품고 있는 가장 야심찬 기획은 ‘유라시아 신화대전’ 저술이다. 북아시아로부터 시작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신화들을 집성하는 기획이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거기엔 어떤 공통 화소가 있는지 밝혀내고 싶어요.” 필요한 자료의 판권을 확보하고, 리그베다나 조로아스터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등 차근차근 이를 위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일단은 다시 중앙아시아의 목축지대로 돌아가 ‘유목’에 대한 현장조사를 이어가야 한다. “낯선 곳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기 위한” 그의 사유는 <한겨레> 토요판에 실리는 ‘공원국의 유목일기’ 연재로 만나볼 수 있다.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때의 기쁨이 있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으로는 상쾌하다”는 그의 말에서, 여행과 인문학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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